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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충좌돌

나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라고들 한다. 기업들은 자신만의 특징을 정의할 줄 아는 지원자를 원하고 철학자들은 진정한 행복이 나를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린 명사들을 찾는다. 나도 남도 단순하게 이해하여 세상에 대한 불안감을 쉽게 지우려 한다.
하지만 그 단순함에 ‘이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20대 땐 자신을 명확히 정의할 줄 아는 선배들이 멋져 보였다. 하지만 그때 선배들의 나이가 어느새 까마득한 후배로 보이는 지금, 나는 스스로에 대한 궁금증을 잃지 않는 어른들이 멋지다. 여전히 나에 대해 잘 모르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되려 하는 변화무쌍한 변덕쟁이들에게서 나는 멋을 느낀다.

우린 고작 몇 개의 단어들로 결코 정의될 수 없는,
개성 가득한 존재들이기에.
지식은 때때로 저주가 된다. 철학자는 인간에 대해 너무 많이 이해하다 정신병을 앓고 투자자는 돈을 극한까지 이해하여 세상이 숫자로 보인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많이 알고 많이 겪는 것이 꼭 더 많은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될 수만 있다면 내 자식에게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자산, 더 많은 욕심을 물려주기에 앞서 ‘적당한 무지’를 물려주고 싶다. 인생을 딱 절반만 알아서, 인간을 너무 많이 미워하지도 세상에 대한 환멸을 너무 많이 느끼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몰라도 되는 것은 모를 수 있는 적당한 안온함을 물려주고 싶다.

똑똑한 우울증보단 차라리 행복한 바보로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도, 나도.
노력이 미련해진 시대라고들 한다. 듣는 것만으로도 넌덜머리가 나서 노오력이라는 말로 바꿔 부르지 않곤 입에 가시가 돋는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노력이 정말로 싫어진 건 아니다. 싫은 건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것 없는 현실일 뿐이다. 우린 노력에 지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노력으로만 끝나는 현실에 지친 것이다.
나는 바로 그게 내가 그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내 노력이 보상받기 위해선 남의 노력 역시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하니까. 당장에야 그의 성공이 너무 빛나 내가 조금 더 어두워 보일지 모르지만, 어찌 됐든 틈이 생긴 것 아닌가. 아직 내 차례의 희망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아주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마음으로 당신의 성공을 응원하겠다.
나를 위해. 내 노력 역시 올바르게 보상받게 될 날을 위해.
아내에겐 변명이 없었다. 타고난 저질 체력임에도, 선천적으로 아픈 곳이 많음에도, 그게 뭐? 아내는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해냈다.
가끔은 글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 아니 솔직히 자주 때려치우고 싶다. 자극적이지도 효용적이지도 않은 내 글이 보이는 성과에 지쳐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로 옆에서 자신의 길을 우직이 걸어가는 사람을 본다. 아내는 타인의 훈수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스스로 정한 일을 별다른 불평 없이 해낸다. 아쉬운 결과에 후회를 길게 하지 않는다.

아내는 미련해서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기에 꾸준히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메달이 없는 레이스가 더 많다. 누군가는 그딴 걸 왜 하냐고 묻고 또 누군가는 그래서 뭐가 남았냐고 따진다. 매 순간 효용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이기에 우린 점점 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미련해서 꾸준한 게 아니라 흔들리지 않아서 꾸준할 수 있다. 무언가를 남겨야 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에 열심히 산다. 그렇기에 꾸준함이란 미련함이 아닌 단단함이다. 요란한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을 사는 튼튼한 태도다.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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