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이름은 정숙이다. 곧을 정(貞)에 맑을 숙(淑)자를 써 ‘정숙(貞淑)’.
살아가며 알게 된 ‘정숙’이라는 이름에는 ‘곧고 맑다’는 뜻 외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정(貞)’이라는 한자에는 ‘곧다’는 뜻 외에도 비슷하게 ‘충실하고 올바르다, 정절’이라는 뜻이 있었다. ‘숙(淑)’이라는 한자에는 ‘맑다’는 뜻 외에도 ‘어질다, 얌전하다’는 뜻이 있었다.
고운 이름이었지만, 거기에는 정조 있고 얌전해야 한다는,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덕목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정숙 씨’라고 부르는 대신 늘 ‘최 여사’라고 불렀다.
최 여사, 그리고 정숙 씨. 그녀는 나의 엄마였다.
사랑을 하기에 엄마의 삶엔 구멍이 너무나도 많았다. 여기저기 해진 삶을 기우느라 엄마는 누군가의 입김만 닿아도 아팠고 두려웠다. 엄마가 생활에 익숙해져갈수록 엄마의 욕망은 시들었고, 종당에는 바짝 말라 "파락" 하고 잎이 떨어졌다.
무언가를 뜨겁게 원하기엔 엄마 앞에 놓인 굴곡이 너무 깊었다. 그리고 엄마는 절망을 우아하게 다루는 방법을 몰랐다. 절망은 절망 그 자체로 엄마에게 절망적이었기에….
대신 엄마는 무서움을 알았다. 엄마는 무서움 속에서 태어났다.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이모들 말로는 엄마가 어릴 때 심한 열병을 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골 마을이라 의사가 귀했고 그나마 하나 있던 의사는 단순 감기로 보고 약을 잘못 처방했다. 그 약을 먹은 세 살 때부터 엄마는 반쯤 고요한 세계 속에 뿌리를 내렸다. 한쪽이 들리지 않는 세계는 한쪽만 물에 잠긴 식물처럼 부어올랐다. 그 세계는 고요해서 안온하지도, 소음이 사라져 평화롭지도 않았다.
웅웅거리는 낯선 소리들 사이에서 엄마는 홀로 무서움에 떨었다. 세계는 오직, 무서움뿐이었다.
엄마에게는 자신의 이름이 늘 저 멀리에서 들려왔다. 한 번에 알아듣는 경우가 드물어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게 맞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엄마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이내 ‘못난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이후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잘 듣지 못해 사람들과 섞이기 어려웠고, 늘 ‘못난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엄마는 스스로를 못났다 여기며 50여 년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