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의 꿈
2018년 6월 3일 오전 7시
계속 기도했는데 드디어 꿈에 엄마가 나왔다. 하늘나라 가더니 엄마 눈이 파래졌다. 평소 즐겨 입던 옷을 갖추어 입은 엄마는 사람들을 따라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즐거워 보였고 건강해 보였다. 큰 통유리창 사이로 초록 잎들이 넘실거렸고 하얗게 햇빛이 부서졌다.
"엄마!" 하고 목멘 소리로 부르며 달려가자 잠깐 당황하던 엄마는 나를 꼭 안아줬다. 그 모습 그대로 그곳에서 편안하길, 행복하길, 아프지 않길….
작은딸의 꿈
2018년 6월 6일 오전 8시 10분
방금 꿈에 엄마가 나왔다. 장소는 동인병원 같기도 하고 주공아파트 살 때 같기도 하고….
내가 부랴부랴, 마치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애마냥 엄마가 죽을까 봐 초조해 하며 집으로 가는데, 엄마로 보이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반가워서 손을 흔들며 다가가니 정말 엄마가 나와 있었다.
내 마음 한편으론 생각했다.
‘죽은 엄마가 살아왔다! 하늘나라에서 5분만 휴가 나왔으면 했는데, 꿈인가? 생시인가?’
기쁘지만 불안한 마음도 컸다.
정말 하늘나라에서 5분 휴가 받고 내 꿈에 나왔나. 눈도 아프지 않은지 안경도 끼지 않은 채로….
동생이 동영상을 지금 확인해 보란다. 보내준 링크로 들어가니 죽은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영상이었다. 영매 같은 사람이 있고 죽은 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곧이어 그 사람은 자신이 바라던 죽은 사람과 조우했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 채널에는 그런 영상들이 가득했다. 동생은 그 사람을 찾아가고 싶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돌아가신 엄마를 만나고 싶단 거였다.
난 이런 건 다 사기라고 믿을 게 못된다고 했다. 게다가 돈이 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생은 그까짓 돈이야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동생이 보고 싶었다. 그런 꿈이었다.
아빠 말이 다 맞았고 나 역시 자정에 동해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갈 생각을 하니 깜깜했지만 동해 집에 혼자 있을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밤에 혼자 집에 있는 걸 유난히 무서워하곤 했다. 우리 집에 도둑이 세 번이나 든 전력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집에 아무도 없으면 엄마는 아마도 오늘 밤을 꼴딱 새울 것이다.
어린 시절 아빠랑 장흥에 낚시를 하러 간 적이 있다. 아빠 친구들과 함께 낚시를 하러 갔는데 아빠는 어린 나만 데리고 갔다. 저녁에 돌아오겠다 하고 나갔는데, 예상 외로 낚시는 길어졌고, 술에 취한 아저씨들은 운전을 못해 술을 깨고 가려다 보니 그다음 날 집에 도착하게 됐다. 그 사이 엄마는 한숨도 못 잔 채 우리를 기다렸다. 연락도 없이 외박을 한 아빠에 대한 화도 한몫 했을 거다. 게다가 어린 딸자식까지 데리고 가 날밤을 샜으니 엄마가 분노의 밤을 지샌 게 고스란히 이해가 된다.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동해에 내려가야 했고 아빠 말을 듣고 보면 또 아빠 말이 맞는 것도 같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전화기를 들고 난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서 있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꿈에 나왔다. 엄마는 날씨가 왜 이리 우중충하냐며 우울하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날이 이리 더운데 우중충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꿈에 처음으로 엄마가 밝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게 참 아팠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우리의 단란한 한때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딱 100일째 되던 날이었다. 100일제를 지내러 고향에 내려가려 했는데 병들이 발목을 잡았다. 엄마가 겪었을 아픔을 이토록 느리게, 또한 뼈저리게 느끼면서 속상하고 죄송해서 제발 꿈에 나와 달라고 빌었는데 101일째, 엄마가 꿈에 나왔다. 마치 엄마는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잘 먹고 있다고, 엄마는 괜찮으니 엄마 걱정은 말라는 듯….
엄마는 꿈속에서조차 너무나도 나의 엄마여서 딸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애써 걸음하셨나 보다.
보고 싶은 우리 엄마….
다시 태어나도 난 엄마 딸로 태어날 테다.
우리 엄마는 그토록 좋은 엄마였다.
오늘만 눈물을 훔치고 또다시 나는 살아갈 것이다.
엄마의 너른 품을 기억하며 살아낼 것이다.
엄마의 첫 생신제가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어디론가 떠났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엄마의 꿈을 자주 꾼다.
잔인한 꿈에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남편을 껴안았다.
남편은 본인도 악몽을 꾸고 있던 중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토닥였다.
남편에게 악몽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 꿈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잠에 빠졌다. 이번 꿈은 몹시도 잔혹했지만 이상하게 소설적인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엄마가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꿈속에서라도 엄마가 집안일에서 해방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꿈의 본질 같았다.
나는 전부터 이사를 가고 싶었다. 모든 게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집터가 좋지 않은 건 아닐까, 갈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모든 게 좋아졌다,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모든 건 그대로고 엄마는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며 나는 신경 쇠약에 걸려 점점 미쳐가고 있지 않나 여겨졌다.
남편에게 말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꿈 덕분에 매일 일어나는 시각보다 30분 먼저 깨게 됐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엄마를 떠올렸다. 꿈속 축 늘어진 채 화장실에 엎드려 있던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던 현실의 엄마와 겹쳐져 마음이 따끔거렸다.
창 밖에선 햇살이 부서졌지만 침대 밑 매트리스는 이상하게 차가웠다.
사라짐. 꿈과 죽음은 그 속성이 비슷하다.
정처 없고 가는 데 없이 잊힐 뿐이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내가 아득한 것은 곧 휘발될 꿈의 기억과 그 기억의 끄트머리를 붙잡고서라도 돌아가신 엄마 곁에 머물고 싶은 나의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지은의 남자친구처럼 밤을 걸으며 밤의 장막이 걷히길…. 엄마를 기억하려고 애쓰며, 부유하는 엄마와의 추억들을 볼 것이다. 아마도 나의 평생에 걸쳐 매일을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