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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충좌돌

프롤로그

엄마를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이 책은 한 번도 진정으로 엄마 편을 들지 못했던 아이가 커서 기어코 엄마 편을 드는 이야기다.
50여 년을 살다 간 우리 엄마의 이야기가 그저 ‘나의 엄마 이야기’로 그칠 것 같았다면 애초에 이 책을 펴낼 용기를 내지 못했을 테다. 나의 엄마는 시대의 딸로서, 누이로서,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말 그대로 사회적 최약자의 삶을 살다 갔기에 최 여사의 이야기 속에서 읽는 분들 각자가 무언가 느끼거나 사유하거나 포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회사였다. 팀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전화가 걸려 와서 나는 회사 복도로 나갔다. 복도는 어두웠다. 짙고 푸르스름한 어둠이라면 무서웠을 텐데, 갈색의 부드러운 어둠이었다.
"여보세요."
전화 속 여성은 병원이라고 했다.
"그래서요?"
나는 전화 속 목소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전화 속 여성은 현재 우리 엄마가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전화기를 붙잡지 않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엄마 상태가 너무 심각하고 증세가 급박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전에 보호자인 나에게 전화를 한 거라 했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과 일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지만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막 깨어난 나는 남편에게 엄마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병원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얼굴을 찡그리며 엄마가 아픈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병원에서 전화를 줄 테니 그때 오라고 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남편은 당장 옷을 입으라고, 씻지도 말고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그럼 회사는? 학교는?"
내가 묻자 남편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일과 학교, 책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법이야"라고 했다. 그건 우리 엄마라고….
나는 엄마를 후순위로 미뤘다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펑펑 울며 옷을 끌어다 입었다.
꿈에서처럼, 2018년 5월의 그날처럼….
나는 또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엄마를 뒤로 한 채.
죽은 친구가 살아 있을 때처럼 꿈에 나와서 우리 엄마가 모월 모일 모시에 영면하실 거라 말했다. 나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의 말이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악몽을 꿨다고 남편을 소리쳐 깨운 뒤 다시 잠들려고 보니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힘이 없어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우리가 문단속을 제대로 했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그런 내가 무섭다는 듯 깜짝 놀라 쳐다보다가 제대로 문단속을 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너무나도 무서워서 다시 잠들지 못하고 동생에게 카톡을 보내고 유튜브로 웃긴 영상을 보려다 말고 남편을 꼭 끌어안고 다시 잠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도, 친구도, 꼭 끌어안고 싶었다.
잠들기 전에 계속 생각했다. 오늘은 엄마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엄마한테 물어볼 게 아주아주 많다고…. 엄마를 한 번만이라도 안아보고 싶다고…. 그래서 잠들기 직전까지 엄마한테 물어볼 것들의 리스트를 끝없이 작성했다. 그런데 정말로 엄마가 나타난 거다.
"그래도 행복해? 천국에 있어서 행복해?"
꿈 밖의 내가 꿈속에서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엄마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엄마의 눈가가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사랑하는 우리 김. 미. 향, 김. 소. 라 너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행복해. 둘 다 너무 사랑해. 정말 보고 싶어."
이제 나의 울음은 더욱 커져갔다.
그때, 꿈속의 대지가 지진이 난 듯 흔들리더니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누군가 자판을 타닥타닥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위의 공기와 온도가 다시 한 번 바뀌었다.
눈이 저절로 떠졌다. 남편은 오늘 약속이 있어 늦는다고 했다. 나는 이불로 얼굴을 감싸고 운다. 잠들기 직전 빨리 하늘에 가 엄마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떠오른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의 목록은 아직 너무도 길다.
꿈속에서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지 못했다. 평소의 엄마였다. 현실에서는 엄마가 슬플 때, 화날 때, 우울할 때 도통 공감해주지 못했던 나의 죄책감이 표출된 꿈이었을까? 꿈에서처럼 엄마의 말에 깊이 공감해주었다면, 엄마 맘이 좀 더 평안했을까?


도대체 요즘 왜 이런 꿈들을 꾸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엄마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때 엄마에게 반려동물 친구를 만들어주지 못한 죄책감이었을까? 그 후로도 엄마는 종종 내 꿈에 찾아오곤 했다. 어떤 꿈은 기억이 생생했고, 어떤 꿈은 엄마가 나와 주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빨리 누웠다. 누워서 잠이 들면 엄마를 만날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진다. 그래서 나는 이불을 덮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꿈속에서 엄마는 거짓말처럼 내 곁에 있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늘어지게 잠을 자고 싶다. 3일 사이 앓느라 겨우 끌어올린 입맛은 달아났고,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 빠졌다. 진통제 한 상자를 다 비웠다.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고 영양제를 10만 원어치 샀다.
그런데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한 일주일 미친 듯이 자고 나면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 꿈이나 실컷 꾸면서….
그러나 이 여름은 내게 너무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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