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을 옮기는 바이러스는 무엇에 실려 세상으로 퍼지는가? 비말飛沫이다. 비말의 뜻은 ‘튀거나 날아올라 흩어지는 물거품’이다. 갑작스러운 강풍 같은 허파의 공기를 통해 밖으로 나오는 인간의 물기가 비말인 것이다. 인간은 우물처럼 몸 안에 고요한 물을 숨기고 있지 않다. 인간은 태풍을 간직한 바다처럼 에취, 하며 파도친다. 비말에 해당하는 서양 말 그대로, 인간은 물을 공기에 섞어 사방으로 뿜는 ‘스프레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에 우리의 모든 삶이 얽매여 있다. 이는 우리 인간 주체가 바로 ‘허파 주체’라는 것을 알려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자기의식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보하는 주체도 아니고, 모든 경험을 종합하는 초월적 통각統覺의 주체도 아니다. 우리는 그냥 숨을 쉬는 자, 숨 쉬는 일에 모든 것이 달린 자, 바람을 들이키고 내뿜으며 공기에 비말을 실어 날려 보내는 허파 주체이다.
전염병에 대한 우리 시대의 의학이 이야기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질병을 품고 있는 것은 바로 ‘공기’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폐에서 나오는 공기, 기침이 비말을 싣고 가듯이 말이다. 전염병이 인간을 쓰러트리고, 미세먼지가 인간을 갉아먹는다. 우리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우리가 폐를 통해 공기를 순환시킨다는 피할 수 없는 존재 조건에서 온다.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모습이란 바람의 존재, 숨을 쉬는 존재인 것이다.
숨 쉬는 인간은 그 숨 쉰다는 사실로부터 타인을 치유하는 힘 또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힘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상처에 입김을 불어넣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상징적 행위이다.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는 가장 근원적인 일, 즉 숨 쉬는 일을 타인의 치유를 위해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상처에 부는 입김을 통해 인간은 무인도에 갇힌 이처럼 혼자 숨 쉬는 자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숨 쉬는 자, 타인을 위해 숨을 사용할 수 있는 자임을 알린다.
또한 숨 쉬는 일은 우리가 저 혼자의 발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이질성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존재하는 자임을 알려준다. 레비나스는 "타자에 의한 나의 영감(
프네우마라는 말과 더불어 인간의 몸과 정신의 활동 모두를 표현하는 이 낱말은, 우리가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가 말한 ‘창窓 없는 실체’가 아니라, 숙명적으로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면서 존재하는 자임을 알려준다. 프네우마를 지닌 자, 숨 쉬는 자는 홀로 있는 자일 수 없고 타자와 더불어 있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