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모두 품어내는 지성의 소환
"불이익을 받는다는 말이 핑계는 될 수 있지만, 지적인 태도는 아니다”
"만약에 여성이 정말로 남성과 동등하다면,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작곡가, 수학자, 철학자, 혹은 그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을까?" (1971)
미술 평론가 노클린은 이 질문을 던지면서 해당 질문이 얼마나 유의미한지를 밝히며, 또 환경과 제도/계급/사례/개인의 인터뷰 등 넓고 깊게 탐색하며 논지를 전개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진정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기 위해 극복해야 할 지속적 불평등 중 하나로 남성 지배를 지목한 바 있다."
편견과 당연함에 질문을 제기하며 <자유론>의 '존 스튜어트 밀'이 소환되는 게 굉장했다. 나는 몰랐기에…
"우리가 아무리 원한다 해도 리투아니아 출신의 훌륭한 재즈 피아니스트도 없고, 에스키모 출신으로 이름을 날린 테니스 선수도 없지 않은가."
작품들에 '여성성'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올바른지, 작가를 탄생시킨 제도적 환경적 배경에는 어떤 차별이 존재했었는지(남성에겐 디폴트였던 '누드 모델 교육'이 제공되지 않았던 점/귀족은 계급은 높으나 작가가 되기는 힘들었음 등등 그 배경을 다룬다), 과학적으로 무능하다는 주장이 입증됐다는 것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와중에 특이점을 만들어낸 여성작가(로자 보뇌르)의 정체성에는 내면 속에 여성 작가라는 죄책감 또한 있었다며 환경적이고 제도적인 차별 장치들이 여성 작가의 성공과 성장을 내면적으로 제약한다는 점까지 지적하면서...
"하지만 그들중 누구도 성관계나 동반자 관계를 선택과 더불어 자동적으로 그만두어야 하지는 않았다."
50년전 미술 씬에 던져진 글이기에 현재의 미술 씬과는 대비가 되지만, 그럼에도 성별에 따른 주체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일은 여전히 유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말대로, '패러다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무늬만 여성 평등이 아니라 진정한 여성 평등을 위해,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질문 중 하나를 다루고자 했다. (…) 질문에 바탕이 된 지적 하위구조에서 전체적인 오류가 무엇인지 검토했다. (…) 예술적 성취를 위한 전제조건이 개인, 즉 사적인 것보다는 제도, 즉 공적인 것에 달려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이로써 이 글이 예술의 다른 영역들을 탐색할 패러다임을 제공했기를 바란다."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
은 노클린이 여성 작가의 성장과 연구자들에 대한 행동을 촉구할만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노클린은 페미니즘 미술사를 만들어온 학자들, 연구자들을 '공동체'로서 여겼다는 것. 여성과 여성의 연결, 연대는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하고, 연대가 더 효과적이고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그 힘이 모여야하는데, 노클린은 '우리'라는 명명으로 다른 주체들과 함께함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 이야기는 "여성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임원이 되든 말든 상관없이 그 궤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어떤 여성 임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여성이 자신의 위치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약자의 위치이지만 때로는 외부인이라는 상황을 활용해 더 적극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알리며, **"도전에 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만큼 용감한 자가 미지의 세계를 향해 약진하게 될 것이다."**라는 도전적인 말로 마무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여성(작가)의 인권 신장'만을 부르짖지 않는 그런 품위있는 말로 어떤 단락이 마무리된다.
'아이디어나 장인정신에 대한 집중력과 집요함, 그리고 외골수적으로 몰입하는 '남자다운' 특성을 택해야만 한다'
논고 게재 30년 후
이 논고가 나온 뒤, 지금은 해당 씬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당연히 질문이 떠오르고, 이 부분을 다루어주어서 좋았다.
예술에 종사하거나, 유행하는 전시를 간다기보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특히 젠더 관점에서 예술 시장을 바라봤거나 아트수집가로서 활동하지 않는다면(=나같이 얕게 알고 있거나 현대미술의 흐름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 사실 알기 힘들 수 있는 내용들인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을 지적하며 그 이야기를 다루어주어 또한 도움이 되었다.
우리를 모두 품어내는 지성의 소환
오래된 질문일 수 있으나, 여전히 이 질문에 움찔거리며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마주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현대 직업군에도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에 대해, 궁금하건, '다른 분야도 그렇다'며 맞장구 치고 싶건, 불쾌하건, 이 문장에 반응하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것은 논고이므로 머리말부터 천천히 저자의 논점을 따라 읽으면서 ‘지성이란 얼마나 많은 것을 아우르는 작업인가'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데, 지엽적이고 이기적인 혐오 논쟁보다, 보다 넓고 멀리, 또 깊이 볼 줄 아는 지성이 우리 안에 내재되기를 바란다. 현상을 넘어선 명제, 더 높고 더 좋은 것을 추구하고 바라보는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하기에 지금 이어령 선생님의 글도 우리에게 하나같이 바지런히도 읽히고 있다는 것을,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도서제공: 아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