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윤 글. 잠산 그림. 올리 출판사
세로 판형에 잘 어울리는 그림이 시원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 처음 그림책 소식을 들었을때부터 궁금했다, 내가 아는 그 잠산 작가님이 그리신게 맞나? 어 그런데 그림이 내가 알던 그림이 아니네 ?
기존 그림에서는 뛰어난 테크닉과 강렬한 컬러에 시선을 사로잡혔다면, 이 그림책의 그림은 선도 더 자유분방하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컬러또한 채도가 낮은 색들을 써서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이다.
핑크색은 인어 세 자매의 판타지를 보여주기에 딱인것 같고..
광고나 프로젝트에서 요구되어지는 그림은 아주 소수의 장면안에 주문자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도록 밀도있게 작업을 해야 하는데 반해 , 그림책은 수십페이지에 걸쳐 글 작가의 서사를 그림작가의 상상력으로 풀어놓아야 하기 때문에 훨씬 어렵고 고민이 되는 작업이었다고 하셨다.
어린이 동화책 전집을 만드는게 꿈이었다고 말씀하시는 작가님에겐 이번 작업이 그 꿈에 한발자국 다가가는 설레는 도전이었을텐데 그 설레임과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좋았다.
인어를 떠올리면 보통 인어공주가 젤 먼저 생각나는데 물고기 비늘 꼬리를 가진 인어아빠라니 ..처음엔 너무 생소했다. 엄마는 없지만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세딸 그리고 그 곁은 지키는 든든한 아빠. 그들이 육지로 소풍을 온 장면으로 이 그림책은 시작한다.
태양이 가장 오래 떠오르는 곳, 바람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 , 꽃들이 가장 오래 피아나는 곳을 찾았습니다 라는 문장은 너무 시적인데?^^ . 뭐든 좋은것 만 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은 다 똑같잖아?. 인어 아빠도 인간 아빠도 말야.
넷이서 지는 해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뒷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책의 베스트 컷이기도 하다.
소풍을 마친 가족은 바다로 돌아가는 중에 그만 어부의 그물에 걸리게 되고 , 인어아빠가 내민 손을 맞잡은 어부는 다행히 인어들을 놓아준다. 아빠인어는 그 어부를 떠올리며 고마움에 눈물을 흘리고 , 눈물은 아름다운 진주로 다시 태어난다. 고마움을 갚기위해 어부의 집에 진주를 가져다두고 오는 아침 바다는 여느때처럼 평화로운 아침을 열었다 라고 이 책은 끝을 맺는다.
부모가 된 지금 읽었기에 더 공감하는 그림책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를 양육한다는건 크나큰 축복이지만 더 큰 책임감이 따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 양육자가 꼭 엄마일 필요는 없다는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했고, 흔한 엄마 이야기가 아닌 아빠 이야기라 신선하다.
평소 강인해보이는 나도 애기치 않은 사고에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 나는 잘 안다 그래서 저 인어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어부아빠의 손을 맞잡았을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 내가 지금 유일하게 도움을 요청할 상대는 당신뿐입니다. 당신도 누군가의 아빠잖아요. 제가 당신에게 지금 드릴수 있는건 제 간절한 눈빛과 떨리는 두 손뿐입니다. 제발 놓아주세요 !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
가끔은 이런 간절함이 기적을 만든다. 어부아빠가 딸인어들을 놓아준것처럼 아직 우리 주변에는 남의 곤란함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연대가 있다고 굳게 믿는다. 어릴적 아빠를 잃었던 허정윤 작가님도 아빠친구분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자랐다고 했다. 그 경험이 멋진 그림책이 되어 탄생했다. 전작 [아빠를 빌려줘]에서도 무언가로 아빠의 빈자리가 채워지는 위로를 받았고 , 이번편 [ 인어아빠] 에서도 아빠란 존재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든든한 울타리인지를 떠올리며 위로받는다. 거두절미하고 아빠에게 잘해야 겠다. 늘 아픈 엄마만 챙겼지만 오늘은 그 울터리를 처음 친 아빠를 기념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