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난 국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 지성사
내게 첫째로 이 책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서구의 시선으로, 서구인들의 이론을 들여와 우리나라의 불평등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지극히 동양적인 우리만의 시선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작가는 단순히 주장만 펼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를 각종 표와 그래프, 통계를 함께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에 신뢰도를 높였다. 논제 자체가 자칫 딱딱할 수 있다는 편견은 역사적인 사실과 그림 , 때때로 등장하는 유머 등으로 말끔히 지웠다. 아쉬웠던 점을 굳이 꼽으라 한다면 표나 그래프가 설명하는 해당 페이지에 있지 않을 때는 책장을 앞뒤로 넘겨가며 재확인 해야했다는 거랑 (워낙에 데이터가 방대하고 분석이 많았기 때문에 한 지면에 동시에 싣기는 힘들었을것임을 알지만 ) 주석의 글씨가 작아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책의 판형이 조금 더 크고 글씨가 조금더 크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 그리고 비슷한 맥락의 문장이나 문단이 책의 이곳 저곳에서 반복되서 나오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강조된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할수 있다는 점이 나는 좋았으나, 다른 독자들은 장황한 설명에 자칫 지루하다고 느낄수도 있을 것 같다. 위에 언급된 물리적인 불편함을 제외하고 내용만으로 평점을 준다면 5점 평점에서 5점을 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치밀함의 결정판? 결과물? 인 것 같다.
의구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이 책을 덮는 순간엔 내가 완전 설득 당했다는 걸 알았다. 가설과 검증 여러 그래프와 논문의 인용 등.... 의심을 품으려고 하는 순간 작가는 이미 그 의심을 예측이나 한 듯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반박하고 있었다. 단 한 순간의 방심도 용납지 않는다는 듯이, 크게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쌀, 재난, 국가 이 세가지 키워드가 도대체 어떤 연결구조로 영향을 주고받아 동양사회 특히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불평등과 사회구조를 만들었는지를 다양한 각도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불평등’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3부작인 <불평등의 세대> , < 불평등의 극복>의 중간책으로 보면 이해가 쉽겠다. 벼농사를 짓기에 완벽한 조건이 아닌 우리 한반도에서 어떻게 쌀이 주식이 될수 있었을까? (부끄럽게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우리나라가 벼농사에 가장 완벽한 기후와 토양을 갖고있었기에 쌀이 주식이 될수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 바로 협업과 위계구조에 기반한 마을 공동체의 조직 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한 가뭄이나 홍수등의 대규모 재난에 더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더 큰 조직 그러니까 국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권력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되고 , 조직과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한 이 시스템이 산업화 되는 과정에서 조직을 어떻게 경쟁과 비교속으로 내몰았는지, 이렇게 심화된 연공제도로 이어진 위계구조는 계속적인 불평등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며 작가는 독자들에게 강한 어조로 탄탄하게 설명하고 또 설득하고 있다.
' 내가 밀농사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집단주의에 더 가까운 지금의 내 성향은 개인주의에 더 가까이 변해져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국가는 불평등을 시정하고자 더 적극적으로 강력하게 액션을 취했겠지?'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느냐를 가정해가면서 작가의 글을 읽어도 재미있을것이다. 비교설명이 확실히 이해를 도운 페이지가 다수이긴하나 페이지 수가 좀 되기 때문에 어떤 장에서는 집중도가 좀 떨어지는 경향도 있었다.
벼농사를 짓기 위해 탄생한 협업 시스템은 공동생산, 개별소유가 가능한 구조였기에 양날의 칼 ( 평등화와 차별화의 욕망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이중적인 체제 ) 처럼 경쟁 또한 가속화 시켰다는 설명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또한 흥미로운 주제는 벼농사 체제에서 기원하는 협업과 조율의 문화적 DNA가 코로나와 같은 재난시기에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쌀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더 적은 경향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재난대비를 위한 개인의 자유 양도 계약서는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싸인이 끝난 상태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렇기에 자유주의 원리가 시민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영미권과 서유럽에서 확진자가 더 많았던 거라고. 팬더믹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나라 정부가 보여준 재난대비 능력과 국민들의 협조가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나 아직도 만연하고 있는 학연-지연-혈연 네트워크를 조장하는 불평등의 생산자로 국가를 평가한다면 이 점은 분명 개선되어져야 할 문제다. 신분유지 또는 신분상승을 위한 과거제도가 지금의 수능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연공제도가 유지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연공제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 그리고 386세대들에게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중심축이라는 것은 높이 인정하지만 그대들이 변화를 수용하길 거부한다면 그대들이 이루었던 경제는 무너질 것이며 그대들의 후손인 우리 모두의 아들딸들은 비정규직으로 불안한 생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거라고.
자연재해를 다스리고 방비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국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왔음을 우리 모두는 안다. 국가는 선별 복지가 아닌 보편복지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고, 차이가 너무 크지 않는 선에서 직무능력에 따른 보상체제를 설계해야 한다는 작가의 해결책 제시에도 힘을 보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