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는 그 자리에 우뚝 섰고, 그렇게 두 여성은 1, 2분가량 어둠 속에서 서로를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치가 끝나고도 올리브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버리나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그녀는 버리나의 기묘한 태도를 어떻게- P643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버리나가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지금까지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했고,
완전히 꺾인 채 의기소침해 보였다. 이것은 거의 최악의 상황-지금까지 일어난 일보다 더 나쁜 상황이 있을 수 있다면 - 이나 마찬가지였다. 올리브는 가엽게 여기고 안심시켜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잡은 손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남김없이 읽을 수 있었다-그것은 일종의 수치심이었다. 자신의 의지박약에 대한, 오전에 별 저항 없이 재빨리 굴복하여 제정신이 아닌 일탈을 저지르고 온 것에 대한 수치심이었다. 버리나는 항변 한마디 없이 그 감정을 드러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침묵 그 자체가 애원이었다-그것은(올리브가 비난하는 말을 퍼붓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왔던 마음 그대로)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아달라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을때까지 그냥 가만히 있어달라고 올리브에게 애원했다. 올리브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아니,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만큼 참담함이 더 깊어졌다. 지금은 그냥 여기 앉아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어주기로 하자, 그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밖의 어떤 방법으로도 서로를 도울 수 없었다. 버리나는 머리를 뒤로 기댄 채 가만히 눈울 감았다. 이렇게 한 시간 쯤 어둠이 짙어지는 방에 앉은 채 두 젊은 여성 중 누구도 입울 열지 않았다. 틀림없이 그것은 일종의 수치심이었다.- P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