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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 사세요
  • 엄마의 엄마
  • 스즈키 루리카
  • 12,600원 (10%700)
  • 2021-01-15
  • : 340

한국 소설은 최근 몇 년간 여성 서사나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잘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일본에서는 엄마와 딸, 혹은 할머니부터 손녀까지의 이야기를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이 책의 소개를 보자마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평단 신청을 했는데 좋은 기회로 당첨되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책이 도착했는데 책 표지의 일러스트부터 귀엽고, 책 안의 색감도 좋아서 책을 받기 전보다 더 기대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가장 먼저 펼쳤을 때 보이는 것이 작가 소개다. 당연히 '2003년 일본 도쿄에서 데뷔했다' 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태어났다'였다. 충격이었다. 일본에서 2019년에 이 책이 나왔으니까 작가는 한국 나이로 17살 때 이 책을 낸 것이다. '나, 지금 천재의 작품을 읽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데 전혀 중학생이 쓴 글 같지가 않았다. 주인공이 중학생이니까 당연히 중학생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유치하거나 사춘기 감성이 묻어있는 것이 아닌 표현도 재미있고, 스토리 또한 흥미로웠다. 근데 또 작가의 말을 보면 자기는 어떤 플롯 같은 것을 생각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등장인물이 움직여주는 대로 글을 쓴다고 한다. 한마디로 머릿속에 상상력과 이야기가 넘친다는 것 같은데... 그저 천재라고 말할 수밖에... 왜 일본 작가들이 이 어린 작가에 집중했고, 좋은 상을 받고, 이렇게 한국까지 번역돼서 책이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왜 나는 이제야 이 작가를 알게 되었나 싶다.

책 제목이 <엄마의 엄마>여서 책 소개에 나와있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우당탕탕 스토리가 한 권의 책으로 되어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책 전체가 '다나카 하나미'의 세계관은 맞는데 할머니와의 에피소드는 '태양은 외톨이'이고, '신이시여, 헬프'는 하나미의 초등학교 때 친구인 미카미의 이야기 '오 마이 브라더'는 하나미의 초등학교 때 선생님인 기도 선생님의 이야기다. 처음엔 할머니와의 에피소드가 더 나오지 않아서 솔직히 실망했는데 뒤의 두 작품도 재미있어서 그런 생각은 금방 접게 되었다. 아마 언젠가 엄마와 할머니의 에피소드는 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이라는 하나미의 초등학생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읽어보면 미카미나 기도 선생님의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 한 번 읽어봐야겠다.

'태양은 외톨이', '신이시여, 헬프', '오 마이 브라더'는 다 결국은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미는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 만나게 된 외할머니, 그리고 엄마와 외할머니의 관계, 하나미의 이웃집 청년 켄토씨와 친구 야쓰시타 씨가 중학교 시절 겪은 일, 또 엄마의 재혼 후 가족에서 겉도는 사치코, 여름방학에도 집에 오지 않는 미카미를 집에 오게 하려고 거짓말까지 치는 가족, 미카미와 계속 시간을 같이 보내려는 가족에게서 거부감을 느끼는 미카미, 마지막으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 갑자기 실종된 뒤 형을 항상 그리워한 기도 선생님 등 다양한 가족의 갈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평소에 가족의 평화, 가족 관계에 대해 정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가족은 떨어져 있어야 사이가 좋다는 말에도 적극 동의한다. 그런데 이건 성인이 되어서야 자리 잡은 내 생각이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사춘기 시절에는 '우리 가족은 왜 이렇고, 나는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고'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싸움을 많이 하거나, 내가 차별을 받거나, 찢어지게 가난했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사춘기 때는 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하나미는 그런 생각을 안 했지만, 미카미와 사치코는 자신들의 가족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듯한 태도를 보여서 나의 중학생 시절도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이 친구들도 고등학교를 올라가면 생각이 달라질까? 사실 가족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되는 것은 역시 타지에서 혼자 살아봐야 결정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지방에 살고 있으니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 서울로 가거나 아니면 더 큰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 내가 고향에서 취직을 하지 않는 이상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선택지는 나에게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서 가족과 떨어져 자신의 세계를 만든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과의 절연을 선택하고 자기만의 세계로 떠난 기도 선생님의 형, 어떤 숨겨진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미의 할머니도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고, 미카미도 가족과 떨어져 학교로 돌아갔고, 사치코도 언젠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떠날지도 모른다. 하나미의 할머니에 대한 감정은 조금 복잡하지만, 그래도 이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세계에선 조금 더 평화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내 세계를 만들어 떠났다가 코로나로 인해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왔는데 1년 동안 부모님 집에서, 부모님 돈으로 편하게 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또 나의 세계를 만들러 떠나야 한다. 나는 또 다른 나의 가족을 만들 계획은 없지만, 항상 내가 꿈꿔 온 나의 집 같은 건 있다. 그래서 얼른 목표했던 것을 이루고 예쁜 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

단순히 3대에 걸친 여성 서사를 읽어보고 싶어서 읽은 책인데, 그것보다도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좋은 작가, 재미있는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나올 스즈키 루리카 작가의 작품들도 궁금하고, 다나카 하루미의 세계관이 어떻게 넓혀질지도 궁금하다. 마음 같아선 하루미가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까지 하는 것도 보고 싶네!!! (대학에 안 갈 수도... 취업이 아니라 창업을 할 수도 있지만...) 2021년 첫 소설로 좋은 작품을 읽어서 기분이 좋았고, 올해 독서 생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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