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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님의 서재
  • 감기
  • 윤성희
  • 12,600원 (10%700)
  • 2007-06-20
  • : 888

2004년 9월 25일부터였다. 그해, 나는 맹장수술을 했고 어머니는늘어나는 뱃살을 고민하다 러닝머신을 샀다. 캐나다로 간 외삼촌은 종종 전화를 걸어서는 외롭다고 말했다. "돈을 벌려면 외로워야지." 어머니는 외삼촌에게 말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고개를갸웃거렸다. 어머니는 하루에 한시간씩 달리기를 했지만 뱃살은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끊으라고 말했다. 어머니는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본 그때를 잊을 수가 없었다. 국밥집에서일을 하기 전 어머니는 옆마을 방씨네서 식모살이를 했다. 그 집에는 아이를 낳은 후 산후통을 심하게 앓는 며느리가 있었다. 어머니는 기저귀를 빨면서 죽어도 아이 따위는 낳지 않을 거라고결심했다. 어느 여름날, 방씨네 식구들은 마루에 둘러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칭얼거리던 아이도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어주자 텔레비전 선전에 나오는 아기들처럼 웃었다. "난 한 숟가락밖에 못 먹었단다." 어머니는 그날 이후로 방씨네 식구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 마음이 사라지지않았다. 어머니는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에 일곱살 이후로 가슴어딘가에 걸려 있던 묵직한 돌덩어리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단 한 숟가락만 먹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아버지가 같이 잡시다.라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 라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배운 영어단어는 투게더였다. "난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스크림을 끊을 수는 없어." 어머니가 말했다.
뱃살이 줄어든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러닝머신을 쳐다보면서 할부금을 갚으려면 몇달이 남았는지를 생각하면 저절로 살이 빠진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아버지의 공장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 직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채권자들을 피해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도피를 했다. 역전여인숙 301호의 텔레비전은 채널이 하나밖에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야구경기를 보기 위해 안테나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포기하고 여인숙 천장의 얼룩을 바라보면서 긴긴 밤들을 보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숫자는, 잠 못 이루던 그 밤에 만들어졌다.
갚아야 할 빚과 갚을 수 있는 빚을 계산하다보면 누구나 머릿속에 숫자가 빙빙 돌게 마련이겠지만.-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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