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업 리뷰
Callby09 2023/09/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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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업
- 강화길
- 12,600원 (10%↓
700) - 2023-08-25
: 1,887
항상 독보적인 여성 서사를 보여주는 작가 강화길의 신작 『풀업』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을 통해 출간되었다. 어머니와 두 딸이 등장하는 여성 가족 서사가 그려지지만,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따뜻한 관계는 엄마 영애와 둘째 딸 미수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미수가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고, 그녀에게 기대는 영애 사이에서 첫째 딸 지수는 소외되고 무시당한다. 지수는
"대학을 재수해 들어갔고,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다 떨어졌으며, 당연한 수순을 밟듯 취직도 늦는"(10쪽) 사람으로, 전세 사기를 당하고 엄마 집에서 살게 되면서 가족간 갈등은 심화된다.
어느날 지수는 매일 운동하는 여자를 마주치고,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한다. 운동을 통해 지수는 "아주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며 주체성을 되찾는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꿈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모습을 통해 그녀가 소외와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한층 더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말미에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풀업 운동을 시도하는 지수의 모습은 그녀의 성장과 이미지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괄호를 통한 서술 방식이었다. 『풀업』에서는 괄호가 내가 지금껏 봤던 어느 소설보다 더 많이 쓰여졌는데, 이 괄호의 기능이 흥미로웠다. 괄호 안의 서술자는 상황 및 심리를 부연 설명해주며, 독자들이 지수에 대해 보다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마치 얘기를 들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첨언하는 느낌을 주어서 인상적이었다. 또한 세 모녀의 내밀한 감정선을 괄호를 통해 섬세하게 표현하여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졌다고 생각한다.
p. 69 운동을 배운 지 겨우 한 달 반이었지만, 지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 그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수의 몸이 변화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매일 새벽 지수를 집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건 바로 그 감각이었다. 아주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뿌듯함. 삶의 다른 것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p. 83 다만 영애 씨는 짐작했던 것 같다. (그랬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미수가 그네를 높이 타는 걸 보면서 말이다. 저 애가 나의 자랑이 될 거라고. (나를 책임지게 될 거라고.) 그렇다면 지수는 뭐였을까. 겁이 많고 쉽게 포기하는 아이. 험악한 예언을 들어도 아무 말 못하는 아이. 뭐든 동생보다 부족한 아이. 대학도 취업도 모든 게 다 늦은 아이.
p. 89 지수는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지수는 시들어가는 식물이 아니었다. 설사, 시들어간다고 해도, 베란다 한구석에 계속 처박혀 있고 싶지는 않았다. 지수는 빛이 필요했다. 빛을 원했다.
p. 98 하지만 지수가 묻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 것들을 제외한 삶. 빨래와 화장실 청소를 해주고, 생활비를 나누어 내고, 필요할 떄마다 곁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과 함께 사는 삶 말고, 그냥 영애 씨와 지수의 삶. 엄마, 엄마는 나랑 사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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