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수업을 듣다보면 알다가도 모를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5~6년 전 제가 교리수업을 듣던 중 아리우스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헷갈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야기도 솔직히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세 위격인 성부·성자·성령이 한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만일 누군가에게 가톨릭의 삼위일체론에 대해 물어오면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톨릭 교리서』를 읽는 동안 예비신자였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영성체도 못 하고 미사보도 쓸 수 없었던 시절, 저는 정말 제 집 드나들 듯 성당에 다녔습니다. 빨리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는 욕심뿐이었습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지인의 추천으로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면서부터 의무감과 중압감에 짓눌려 지금은 성당 자체를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요. 그 때는 그랬습니다.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십계명 등은 가톨릭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천사의 인사, 이웃에 대한 사랑, 내게 상처 입힌 이를 향한 용서, 기도의 정석 등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리우스나 마니교, 네스토리우스 같은 이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오류가 없지만, 우리의 지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말미에 책 전체의 요점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앞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굳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설령 돌아가더라도 책의 문장이 어렵지 않아서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성당 사람들의 표현대로라면 저는 이미 하느님을 떠났기 때문에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이 책을 고를 자격이 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상처받고 자란 것에 대해 일절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본인들끼리 이야기하기 바빴습니다. 레지오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학폭을 오래 겪어도(저를 가장 심하게 따돌리던 아이가 해당 성당 출신이더군요), 대인관계가 불편해도 제게만 마음을 열라고 강요하며 비웃었습니다. 오래 전 개신교 교회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도 하느님한테 그러면 안 된다, 미사는 빠지면 안 된다고만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하느님이고 뭐고 다 치워버리고 싶습니다. 1월 하순부터 시작해 부활시기의 중반에 다다랐지만 아직도 판공성사를 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사람들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좁은 시야로는 사람들의 조롱이나 경멸이 고깝게 느껴집니다. 나 하나쯤이야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겠지. 어차피 가봐야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이런저런 부탁만 해댈 건데. 이런 마음뿐입니다.
다들 하느님께로 잘만 돌아가는데 저는 여전히 멀리서 서성거립니다. 어릴 때부터 외롭게 자라왔고(가족의 유무와는 별개로), 신에게조차 외면당한 저를 누가 좋아할까요. 서평이랍시고 개인적인 이야기만 쓰는 저 같은 사람을요. 저를 비난하던 한 사람이 소리 소문 없이 제게서 나가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그의 시시껍절한 잡담에 대응 안 해도 돼서 다행입니다. 제가 먼저 연락할 일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