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폭력과 학대를 경험하였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또, 그런 환경에서 자라 온 스스로를 보듬고 위로하는 일을 못 합니다. 한때는 손목을 그었고, 정신과에서 처방받아온 약을 한꺼번에 복용한 적도 많습니다. 모두가 저를 미워했고, 저 또한 그런 제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만 잊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너무들 쉽게 말합니다. 어떤 이는 여전히 제가 과거에 사로잡혀 평생 그렇게 살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저의 글은 상처와 분노로 얼룩져 읽는 이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실제로 제 글이 불편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복한 글, 밝은 글, 담백한 글로 다시 쓰라고 말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20여 년 간의 고통을 한순간에 잊어버리고 밝게 살라는 말은 강요요 폭력입니다. 저는 여전히 헤매고 있으며, 밝은 척 하다가도 어느 순간 과거가 떠오르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래서 제가 글을 써도 인정받지 못하나 봅니다. 이게 사람들이 저를 싫어하는 이유인가 봅니다. 싫어하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늘 미움 받고 살았으니까요.
저처럼 늘 폭력에 시달려 온 삶을 살아온 이는 제 주변에 거의 없더라고요. 그러니 저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그저 어린애가 징징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정신과에 입원하였을 때 의사가 저의 얼어붙은 마음에 훅 들어온 이후에는 저도 조금씩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싹텄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다독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책도 여러 권 읽고 가끔은 그림도 그리면서 차츰 달라지고 있습니다. 가해자들이 저에게 사과를 하러 오든가 복수를 당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저도 제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요. 그림을 잘 못 그려서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겪기 일쑤입니다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책에서는 사회적 트라우마, 더 나아가 국제적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는 저의 상처가 너무 많다보니 개인적 상처에 국한하여 부족하게 서평을 썼습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제주 4·3사건, 세월호 사건, 이태원 참사 등 여러 상처를 겪은 데 비해 관련 책이 전혀 없었던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트라우마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역량을 키워나가기 위해,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기 위해,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상처를 딛고 나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 한 번 겪은 고통은 트라우마가 되어 피해자를 평생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