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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lucius님의 서재
  • 한 방울의 내가
  • 현호정
  • 13,950원 (10%770)
  • 2025-01-31
  • : 1,139

이 책을 받은 시점은 내가 정신과 외래진료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나는 교수님에게 뜬구름 잡는 것 같은, 혹은 매우 불편한 이야기만 듣고 돌아왔다. 나의 감정은 분노와 증오가 들끓었지만 차마 입장이 난처해지는 게 두려워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다음 외래가 4월인데 그 날을 마지막으로 종결하겠다고, 더 이상 교수님에게 귀찮게 굴기 싫다고 말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틀째 약을 거르고 있는데, 감정이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는다.

나의 다짐은 우발적이지 않다. 교수님도 내 주변인들처럼 나를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고 무조건적인 용서와 이해를 강요하는 분이었다. 특히 동생 때문에 괴로워할 때 내게도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내 말만 듣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그런 맥락이었다. 나는 사람들 말이나 행동의 의중을 예민하게 캐치하는 능력이 있다. 일례로, 어릴 때부터 친구가 날 대하는 게 친한 친구가 아닌 모자란 애 대하듯 하는 걸 이미 알았다.

그냥 이야기 형식의 소설이 아닌 일곱 편의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모든 편이 이해하기 어려운 듯 아닌 듯 우울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뭔지 모르게 마음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조금만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심정으로 끝까지 다 읽었다. 이별은 대체로 우울한 감정을 유발한다. 한 방울의 눈물이 모험을 거쳐 목을 매려는 눈물의 주인을 찾아낼 때, 마을에서 추방당했던 과거를 지닌 샤먼이 사라진 민나를 그리워하다 눈감을 때.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꾹 참고 읽다보면 어느새 우울함에 젖어든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청룡이 나르샤」가 그랬다. 이야기가 가로로 나뉘어 있어 번갈아가며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한쪽은 운행을 종료하는 열차 납작이의 시점이고 옆쪽은 가난한 연극인 K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물론 「연필 샌드위치」처럼 두 번 읽어도 도통 모르겠는 이야기도 있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 왔지만 의지가 게으른 건지 실패가 두려운 건지 좀처럼 글로 옮기지 못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뜬금없이 나의 소설은 어떤 내용으로 써야 하고 어떤 장치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봤다. 여기에는 다른 소설에서는 보기 어려운 구조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틀을 벗어난 이야기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이 소설집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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