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서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교양서를 읽을까? 왜 교양을 쌓아야 할까?
저자는 전공 서적은 전문 분야를 다루기에는 내용이 어려워 학생들이나 비전공자가 가렵게 읽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손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머리말에 밝힌다.
재미와 실용성을 주는 교양서는 특히 중고등학교에서 꿈을 가지고 대학을 진학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한다. 비단 학생들이 꿈을 가지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문 분야 또는 관련 분야 종사자들에게도 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일하는 사람 또는 기관이나 회사에서는 꿈을 비전이라고도 명명할 것이다. 또는 소명 의식을 가지게 한다고도 할 것이다.
특히, 그런 역할을 할 교양서는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저자의 경험 더 나아가서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이 훌륭한 소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을 소개하는 첫 문장이
“역사를 좋아하는 약사” p2
로 시작한다. 그런 취지에서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를 썼고, 후속편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를 펴낸 것이다.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전편인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도 살까 했지만, 알라딘 평이 8점 대여서 우선 좀 미루어두었다.
어쨌든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는 내가 약사이며 저자인 정승규 님을 처음 만난 책이고, 그 첫인상은 무척 좋았다.
코로나 19로 무척 관심이 높아진 항바이러스제, 정신과 약, 구충제, 피임약, 탈모제, 위장약,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뇌 질환 치료제, 당뇨약, 유전자 치료제 등 정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필요하게 될 약 11가지를 저자의 약학 지식과 폭넓고 깊은 역사적 지식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각 약이 개발되기 전에 속수무책으로 고통받거나 장애를 가지게 되거나 심해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건과 함께 자세히 다룸으로써 “인류 공헌”이라는 약 개발의 비전을 특히 청소년에게 심어준다.
미군 부대에서 처음 발생한 스페인 독감이 전시 중여서 스페인 독감이 퍼진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국민들이 동요할까 봐 언론 통제를 한 것에 비해, 스페인은 중립국이어서 독감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고, 그로 인해 미국의 군부대에서 처음 발발한 독감이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지고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이야기는 이 책의 첫 장에 나와 흥미를 유발하고 몰입도를 고취했다.
프로페시아와 같은 탈모제가 남성 전립선을 치료하는 약과 동일한 성분으로 되어있지만, 함량은 1/5밖에 되지 않지만, 가격이 훨씬 비싼 이유는 탈모에 적합한지 “임상시험”을 거쳐서 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임을 알려줌으로써, 일반인들이 알기 힘든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 시험의 고비용에 대해서도 다루어준다.
1940년대 흙에서 발견한 결핵 치료제 스트랩토마이신으로 불치병이던 결핵균을 없앨 수 있었지만, 스트랩토마이신은 장기간 약을 주사로 투여해서 불편했다. 또한 난청이 생기고 내성균이 나타나서 이를 극복하고 주사제가 아닌 먹을 수 있는 새로운 결핵약들이 개발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소니아지드라고 하고 이 약은 지금도 사용된단다. 1951년 미국에서 이소니아지드 분자를 약간 변형 시켜 이프로니아지드를 만들었는데, 임상시험 중 이 약을 먹은 환자들의 식욕이 왕성해지고, 춤을 추며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우울증 치료제로 써보았는데, 우울증 개선에 뛰어난 효과를 나타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약은 최초의 항우울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프로니아지드를 복용하던 사람 중에 고혈압과 간독성이 나타났고, 결국 1961년 부작용으로 퇴출당했다고 한다. 우연히 약을 개발하는 경우와 아무리 훌륭한 약이라도 부작용이 심하면 있으면 제한하거나 금지된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또 한 번 개발 중의 임상 시험뿐만 아니라 시판 후 임상 시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또 한, 약 개발이라는 과정 자체가 우연과 발상의 전환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우리가 잘 아는 타미플루는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 부사장이었던 재일교포 한국인 김정은 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굉장히 뿌듯했다. 1975년 신풍제약이 한국과학기술원(KIST)과 협력해서 얀센의 구충제 메벤다졸을 다른 제조법으로 자체 생산에 성공했다. 얀센은 자사 제품을 도용했다고 법적 제재를 가하려 했지만, 신풍제약의 구충제는 얀센의 것과는 합성법이 전혀 다르고 그때에는 물질 특허법이 도입되기 전이여서 얀센은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었다. 얀센의 구충제보다 훨씬 저렴하고 우수한 신풍제약의 구충제는 널리 보급되어 구충 사업에 큰 역할을 했다. 옛날에는 강이나 하천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회로 먹는 것을 즐겼는데, 이때 동물의 근육이나 내장에 흡충류 애벌레가 있었는데, 이 애벌레가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간, 폐, 창자에서 성충으로 자라서 병을 일으켰다. 그래서 낙동강 등에서 민물고기를 회로 자주 먹던 사람들은 40대가 되어 얼굴이 누렇게 붓고 앓다가 죽는 경우가 많았는데, 간흡충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1980년대 우리나라 흡충 감염은 400만 명에 달했는데, 치료제인 바이엘사가 판매한 빌트리시드가 세계시장을 독점해서 약값이 비싸서 제대로 사 먹지 못했다. 이때 KIST 응용화학연구실장 김충섭 박사팀이 3년간 연구해서 1983년 새로운 방법으로 바이엘의 빌트리시드의 성분인 프라지콴텔 합성에 성공했다. 신풍제약은 이 합성법을 실용화해서 디스토시드를 만들었다. 게다가 바이엘의 제조법은 공장에서 만들 때 위험해서 대량생산을 할 수 없었는데, 신풍제약의 방법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서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독일 바이엘은 신풍제약에 특허권을 수십만 달러에 사려고 했지만, 신풍제약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국제적으로 연합해서 물질특허를 도입하게 압력을 가했고, 합성법이 아닌 화학적으로 제조되는 물질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물질특허제가 1987년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독일에서 한국 같은 나라에서 이런 약을 개발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가 말 그대로 큰코다친 것이다.
타미플루 개발과 신풍제약의 구충제 개발은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고, 초대형 글로벌 제약사들만이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 아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2019년 11월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가 미국 FDA 시판승인을 받았다. 기존에 나온 약을 1~3개 복용해도 치료가 되지 않는 난치성 환자에게 엑스코프리를 투여했을 때 12주 동안 28%가 전혀 발작이 생기지 않았다.” p268
2001년부터 기초 연구를 했고, 임상 시험과 인허가 과정을 모두 거쳐 개발되었다고 한다. 후보 물질 개발을 위해 합성한 화합물 수만 2,000개 이상이고 FDA에 제출한 자료만 230여만 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은 국내기업이 자력으로 FDA 신약승인을 받은 첫 사례이다.
하지만, 외국 경우, 훌륭한 신약을 개발한 제약사도 주목받지만, 그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노벨상을 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SK바이오팜뿐만 아니라 국내 제약사의 경우는 신약 개발에는 항상 제약사나 CEO가 거론될 뿐 연구원들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국내의 암울한 현실도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줄 수 있지만, 그 꿈을 이루었을 때 조명받지 못하는 현재의 한국은 안타깝고 답답하다.
2015년 개똥쑥에서 개발한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사람은 투유유屠幼 幼라는 중국 여성 과학자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연구를 지시하고 국가 주도로 개발했다고 마오쩌둥이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다. 외국에서 개발된 신약개발 역사를 보면 제약회사보다는 실무를 담당한 인물을 중심으로 보도한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끈기를 갖춘 과학자가 없으면 신약을 만들 수 없다.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성과를 낸 과학자를 조명해야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 앞으로 언론의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보도를 기대한다. p270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는 약에 대한 전문 지식을 전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사실들을 더해줌으로써 흥미를 유발함과 동시 청소년에게는 꿈을 관련 종사자에게는 비전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책이며, 암울하고 답답한 국내 과학계의 현실을 비판해주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