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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름답다.
  • [전자책]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
  • 황헌
  • 14,000원 (700)
  • 2021-01-13
  • : 128

단지 내 하나로 마트의 와인들을 마셔보고 귀결한 독수리가 그려져 있는 Trapiche Vineyards Cabernet Sauvignon 2020이 떨어졌다. 와인의 이름에서 Cabernet Sauvignon (카베르네 소비뇽)이 들어있으니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와인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가 주일 것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는 포도알 하나가 다른 품종에 비해 작아 과육이 작은 대신 껍질이 두껍고 씨가 크다. 그래서 다른 품종에 비해 타닌이 많고 산도도 또한 세다. 타닌이 많아서 오랜 숙성이 필요하고, 달콤하지만 오래 두고 마시기 힘든 멀롯 (메를로)와 혼합하는 경우가 많다.

그 유명한 무통 로칠드 같은 슈퍼 1등급 와인도 60%에서 70~80%까지 카베르네 소비뇽을 섞는다.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이름으로 내세운 나의 애정하는 Trapiche가 동이 났다는 것이다. 하나로 마트에는 Trapiche가 항상 많기 때문에 별 걱정하지 않고 와인을 사러 갔다.

그런데. 그런데.

새로 들어온 와인들이 보였고, 이달의 새 와인으로 추천한다는 라벨까지 붙은 와인이 있었다.

전 세계 와인 앱을 평정한 Vivino 앱을 꺼내들 순간이었다.

( 애플 앱 스토어 링크, Vivino 홈 페이지 - Buy the Right Wine) ) 


별생각 없이 Vivino 앱으로 와인을 찍어 점수를 봤는데, 4.1이다. 하나로 마트에 만원 대의 와인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고, 이마트나 코스트코에 가야 만날 수 있는 4.1의 와인이다. 물론 평이 적어서 높은 점수를 얻었을 수도 있지만, 나와 취향이 87%가 맞다고하고 가격도 12,000원이어서 망설임 없이 구매해서 백팩에 넣었다.




칠레, 미국, 호주 와인을 주로 마셨던 나에게 프랑스 와인이라는 것만으로도 감격과 황홀이 밀려왔다. 어젯밤에 마셔보려고 했는데, 잠시 눕는다는 게 로드와 수영을 하루 동안 해서 그런지 그대로 기절했다. 오늘 밤에 개봉해보리라.


그런데, 내가 어떻게 카베르네 소비뇽이며 타닌이며 멜롯이며 무통 같은 와인을 알게 되었을까?

그것은 황헌님의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서 그렇다.

황헌. 이름은 생소할 수 있지만, 그분의 사진을 보면 '아~'라는 탄성과 함께 알아보시는 분이 많을 것이다. MBC 프랑스 파리 특파원으로 에펠탑을 배경으로 우리에게 유럽의 소식을 들려주셨고, 100분 토론도 진행하셨다.

황헌님은 영국 카디프시티에서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유학 생활을 했고,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프랑스 파리의 MBC 특파원으로 유럽에 머무르는 동안 유럽의 와인도 즐기시고 와인에 대한 지식도 본고장에서 쌓았고 유럽뿐만아니라 아프리카의 유명 와이너리도 직접 방문하셨다.

그의 와인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진한 스토리를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에 담았다.


책의 서두에 황헌님이 밝혔듯이 보통의 와인책은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발음도 어려움 프랑스어로 되어있어서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자신 또한 그런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독자를 위해 경험 위주로 스토리 기반으로 와인 정보를 전달하고 용어는 영어 발음과 함께 자세히 풀어 써줌으로써 그 넘기 어려운 벽에 사다리를 놓아주셨다.

와인을 전문적으로 배우신 분이 아니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저자의 전문 지식에 탄복하게 되고, 직접 현지를 방문해서 찍은 사진들은 그 어떤 와인책에서도 볼 수 없는 사진이라 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와인책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포도 품종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다. 와인은 포도로 만들고 각각의 특색이 있는 포도를 목적에 따라 혼합해서 만드니 포도 품종을 나는 것은 와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멜롯, 피노 누아 등의 특징을 알게 되니 와인이 새롭게 보였다. 또한 잿빛 곰팡이가 포도에 내려앉아 포도의 수분을 빨아들여 껍질이 상하고 쭈글쭈글해진 상태가 되어야 만들 수 있는 귀하게 썩었다는 귀부 와인이나 특정 온도에서 얼어 당도가 매우 뛰어난 포도를 한 알 한 알 따서 만들어야 하는 아이스 와인이 왜 비싼지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와인은 스토리다' 라는 말이 환헌님도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고 나의 심금도 울렸다. 특히, <우정의 포도 메를로> 편에서 그 당시 1000만 원 가까운 페트뤼스 2000의 사연은 출근길에 내 눈을 촉촉하게 만들어주었다.

2006년 8월 12일 황헌님이 3년의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친하게 지내던 조택호 화백과 외환은행 파리 지사 유재후 지점장이 송별 만찬을 했다. 조택호 화백이 신문지에 와인을 싸서 왔고, 그것을 열어 두 사람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의 소믈리에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최고의 빈티지 (와인 생산 연도)로 평가된 2000년산 프트뤼스였다. 소믈리에는 당황했다. 코르키지 (술을 가져와서 마실 때 내는 돈)는 가져온 술의 20~30%인데, 그 와인은 코르키지가 2,000유로 (당시 환율로 약 250만 원) 였다. 유럽 와인 대회에서도 우승한 적이 있는 그 소믈리에는 자신도 본 적이 없는 와인이니 자신에게 한 잔을 주고 50만 원을 내는 조건을 제시했고, 셋은 50만 원 대시 보르도 와인을 주문하겠다고 해서 합의가 되어 프랑스 땅의 우정어린 송별회가 시작되었다.

조택호 화백은 프랑스 미술계가 주목하는 화가이지만, 그 당시에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헌님과 와이너리를 함께 방문하다 조택호 화백이 페트뤼스 2000을 아느냐고 물었고, 황헌님은 당연히 그 비싸고 유명한 와인을 안다고 했다. 그때부터 조택호 화백은 그 와인을 구하는 작전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날 자신의 아틀리에에 노신사가 와서 자신의 그림을 사려고 수표를 꺼냈을 때, 수표 대신 와인으로 받겠다고 했고, 그 와인은 페트뤼스 2000이라고 하자, 그 노신사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와인이라고 수표로 그림값을 지불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화백은 와인을 고집했고, 그 노신사는 와인을 구해 다시 돌아오겠다며 아틀리에를 떠났다. 그 노신사는 프랑스 와인 산업게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고, 두 달 정도 수소문한 끝에 그 와인을 구한 것이다.

그림을 팔아 귀한 와인을 벗의 송별회에 내놓은 그들의 이야기에 벗이 생각나고 그리워 눈이 촉촉해졌다.


역사 속 인물들의 와인에 대한 사랑과 일화도 가득 담고 있는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은 와인잔의 풍미를 한껏 더해준다.

오늘 저녁 Vivino 4.1의 프랑스 와인 코르크 마개 개봉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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