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독서 교실을 운영하는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려다 결국 마음이 말하는 '어린이'에 대해 썼다.
무엇을 쓰고, 왜 쓰는가의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문제는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가'를 정면으로 솔직하게 바라보면 조금은 쉽게 풀리는 것 같다. 오에 겐자부로가 이야기가 복잡해지면 진실을 말하면 된다고 한 것처럼, '쓰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자꾸 어린이 이야기가 나왔다." p5
저자는 아이가 없다. 아이가 없어 아이의 마음을 모른다고 아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생채기 나는 구박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는 일로써 아이와 만남으로써, 누구보다도 객관적이고 진솔하게 아이와 가까이 있다. 양육의 정점을 '아이와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도 하지 않은가. 어쩌면 부모보다 더 유리한 위치로 저자는 아이와 친구와 선배와 후배가 되었다. 후배가 되는 경험은 저자가 집필 중 환기를 위해 피아노를 시작하면서 이미 진도가 나간 선배 어린이들과의 관계에서 얻었다.
저자가 우리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어린이도 어엿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이다. 온실 같은 곳에서 어른까지 성장해서 짜잔 하고 나타나 세상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고 날 때부터 이 세상에서 같은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웃고 아파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다른 문화와 환경을 가진 미국인을 보듯이, 어린이도 어른과 같은 동등한 위치에서 어른과 다른 특징과 문화를 가졌을 뿐이다. 저자는 이것을 우리에게 꼭 전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가치관이 성장한다"가 아니고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로 말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아는 것이 저의 큰 영광입니다." p9
라는 존중과 공경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말을 맺는 저자는 독서교실에서 바라보고 경험한 에피소드들을 그 전하고 싶은 간절함과 감칠맛 나게 잘 버무려 우리에게 선물한다. 에피소드를 읽으며 작성한 반성문으로 나머지를 채워본다.
<반성문>
처음을 잊어버리고 다그쳐서 죄송합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나는 이미 익숙한데 그것을 처음 하는 모든 이들에게 답답해하고 그 답답함을 온 얼굴에 다 드러나게 꾹꾹 참으며 다그치고 모진 피드백을 준 것을 반성합니다. 익숙하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는데, 나는 무심하게 결과와 표면적인 현상만 보고,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며 따뜻하게 위로와 긍정적인 격려도 하지 않고 몰아세우기만 했습니다.
"엄마, 이거 왼쪽은 내가 묶은 거야" p20
순수함으로 최선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을, 세상의 모든 입장과 사연을 아는 듯 무시해서 죄송합니다.
올곧고 정직하게 나아가고 있는데, 저 혼자 있지도 않은 여러 입장이며 일어나지도 않을 무의미한 일들을 앞세우며 그 나아감을 또 답답하게 보았습니다. 항상 마찰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제가 큰 마찰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태도가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볼 낯이 없습니다. 더 신뢰하고 그 올곧음을 알아볼 안목을 키우겠습니다.
품위를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마리아 몬테소리의 <어린이의 비밀>에서 '코 풀기 수업'을 하고 나서 아이들이 너무너무 고마워하며 환호했다고 합니다. 항상 코를 잘 풀지 못해 꾸중을 들었던 아이들이 이제 코를 제대로 풀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서 무척 좋아한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과 익숙하지 않은 모든 분들의 '품위'를 손상시켰습니다. 상대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은 결국 저 자신에게 돌아오고 제 인격과 품위는 몇 곱절로 더 떨어지는 것을 어리석은 제가 몰랐습니다. 다시 한번 품위를 지키지 못하게 해드린 점 크게 사과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처럼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전념해서 열심히 재미있게 노는 데는 10분 또는 15분이어도 넘칠 수 있는데, 그 노는 것에 항상 저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일각의 여유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한 달을 돌이켜볼 때 단 1분의 이야기도 면담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제가 얼마나 그 핑계에 익숙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나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수영을 하면 25m 레인을 20분 동안 볼 때, 수모가 벗겨지려 해서 중간에 잠시 서서 수모만 바로잡아도 피로도가 다른 것을 알면서도, 저는 참 어리석게 행동했습니다.
끝으로 추천의 글에 있는 것처럼, 저는 어린이와 모든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몰라보아서 죄송합니다.
"어린이라는 세계가 정중하고 사려 깊고 현명함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p258
이외에도 각 이야기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고백을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어린이의 세계가 "어린 세계가 아니고 다른 세계"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손이 잘 닿는 책장에 정중하게 이 책을 꽂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