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글은 도도함(나쁘게 말하면 엘리트의식)이 느껴져서 싫다.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작가 김훈과 닮았다. 책의 내용은 좋았는데 문체가 기분이 나빴다고 할까.
“모든 것을 다 아는 고독한 선비 코스프레” 라고 해두자. 코스프레라고 하기엔 저자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지만...
책의 내용은 이렇다. 우리말을 강제로 바꾸려는 순수주의자들에 대한 비판. 언어에 순수한 것은 없으며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다른 언어와 합쳐지는 감염의 단계를 거쳤다는 것. 이것을 억지로 바꾸려고 해봐야 되도 않을뿐더러 민족주의적이라는 비판이다. 실제로 모든 말을 순우리말로 바꾸는 북한의 독재정권을 예로 들었는데 그럴듯했다.
영어공영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고종석은 영어공용화에 찬성하는 입장인데 그것의 이유로 권력을 든다.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지배한다.” 라는 논리인데, 푸코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영어를 못하면 가장 첨단의 정보를 받아보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고, 도태된다는 것. 고종석은 별로지만 책은 좋았던 것처럼, 영어는 싫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한자도 공부하란다. 우리말 어휘의 최소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를 2천자정도만 알면 한글을 더 풍부하게 음미할 수 있다나. 선비라고 느낀게 괜한 게 아니다.
나는 김훈의 글도 싫어하는데 자전거 탄 풍경, 밥벌이의 지겨움, 칼의 노래, 단편집 화장까지 읽어봤지만 도무지 이입이 되지 않았다. 흔히들 김훈을 이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는데, 그래 문장가라고 치자. 그런데 감탄한 것은 ‘문장’ 일 뿐 내용은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내가 김훈에 공감할 중년의 나이가 아니어서 일수도 있다. 그러나 폭넓은 세대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가 훌륭한 작가라고는 할 수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