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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우주
- 에린 엔트라다 켈리
- 14,850원 (10%↓
820) - 2018-09-12
: 7,559
높고 푸른 가을 하늘, 화려한 듯 하지만 차분함이 느껴지는 가을 산이 내 마음을 건드리며 바람이 된다. 바람에 살랑대는 발그레한 코스모스도 좋지만 나이가 들어 그런가 요즘은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이 측은하면서도 예뻐보인다. 괜찮니? 괜찮아! 바스락대며 속삭이는 듯 하지만 경쾌하다. 넌 이번에도 다음 해를 준비하며 귀한 거름이 되겠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함은 아마도 감성을 깨워주는 가을의 분위기를 더 깊이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싶다.
올 가을 고학년이상 자녀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소개한다.
[안녕,우주 Hello,Universe]
책 제목 위로 작은 글씨 문구가 심오하다.
"우연이라 하기엔 운명에 가까운 이야기"
또래 아이 네 명이서 떠나는 우주여행, 행성이나 달나라를 상상하며 SF소설인가 짐작했으나 필리핀 전통 문화와 실제 삶이 한 우물의 바닥에서 만난다고 하니 이 운명같은 이야기가 더욱 더 궁금하다.
우리의 삶은 한마디 말로도 바뀔 수 있다. 글쎄, 그 순간이 언제일지를 생각하며 책을 둘러봤다.
2018년 뉴베리 대상! 뉴베리 메달이 눈에 띈다. 뉴베리가 뭔데? 그래서 찾아봤다. 해마다 미국 아동문학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작가에게 주는 아동문학상. 아동 도서계의 노벨상이란다.
그 밖의 이력이 무지막지하게 화려하니 끌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1장 비참한 여름, 올해 열한 살인 버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중학생이 되는 버질은 이 모든 현실이 버겁기만하다. 시작도 전에 벌써 기나긴 장애물 경주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니 말이다. 버질의 가족들은 버질이 좀처럼 껍데기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며 '거북'이라는 별명을 부르지만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상처받는 버질에게 네가 제일 좋다고 말해주는 할머니가 너무 믿음직하다. 그런 할머니에게도 말할 수 없는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비밀이 있었으니 그게 뭘까? 궁금하면서도 할머니가 들려주는 바위 속에 스스로 갖혀버린 바위소년과 악어에게 잡아먹힌 소년왕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런데 이건 뭐지? 분명 버질은 남자아이 였는데 '나는' 으로 시작해서 성격은 까질하고 키는 160cm가 넘는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이야기이다. 잘못 본 줄 알고 몇 번을 앞장으로 휙~뒷장으로 휙~
독특한 구성이다. 42장까지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네 명의 주인공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이끈다. 서로 연결될 것 같지 않던 네 명의 삶이 서로 얽혀드는 모습을 관점을 달리하여 풀어내고 있다고 하니 읽는 내내 우연과 운명을 말할 연결고리들을 자꾸 찾게되더라.
악몽에 시달려 다시 잠들지 못하지만 새벽에 깨어 해돋이를 볼 수 있어 좋다는 발렌시아.
해가 느리면서도 빠르게 떠오른다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든다던 발렌시아의 양면성을 띄는 화법이 왠지 마음에 든다.
전부가 사라지고 지상에 남아있는 사람이 나뿐인 꿈. 무섭고 외로운 악몽을 꾸는 발렌시아는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스스로 다독이며 앞으로 다가올 즐거운 여름날을 기대한다.
혼자 노는 게 제일 좋아. 그래야 성가신 일도 적지. 그게 뭐 어때서..
관계맺기가 어지러워 스스로 관계 권태기야. 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혼자 인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상대방 신경 쓸 필요없이 나만 들여다볼 수 있으니 더 없이 좋잖아. 껍데기 속에 갇힌 내가 버질이고 외로운 악몽을 겪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한 발렌시아가 나인 듯해서 짠하면서도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버질의 일급비밀인 맘에 둔 여자아이에게 말 한마디 못한 일과 발렌시아의 악몽이 해결되길 바라며 찾은 그 곳.. 새로운 고객은 환영하지만 어른은 사절인 점성술사 카오리 타나카의 명함 한 장이 가슴설레는 순간이다. 자연의 정령과 대화를 하고 우주에 신호를 보내고 별자리에 관심이 많은 카오리의 상상과 예지력은 억지인 듯 하지만 왠지 설득력이 있다. 아이답지 않은 묵직함과 진지함이 느껴진다.그럴때마다 카오리의 동생이자 조수인 겐은 너무도 아이스러운 말들로 감초역할을 하며 재미를 더하니 참으로 귀엽다.
버질을 띨띨이라 놀리며 괴롭히는 쳇! 덩치도 크고 힘이 세다며 무서울 게 없는 심술쟁이 골목대장.. 사실은 큰 개를 무서워하고 큰 뱀에게 물렸다며 거짓말을 한 허풍쟁이다. 이녀석 뱀잡겠다고 설치고 다닐 때 발렌시아의 뱀 연구 노트가 생각나서 조마조마했다. 뱀은 못 잡고 걸리버가 담긴 가방을 우물에 던져 버질을 우물 속에 갇히게 한 장본인이다. 귓볼을 잡아당겨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버질이 걱정된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어. 다음 고객이었던 발렌시아와 카오리, 겐은 버질을 찾기 위해 숲으로 향한다.
그 사이 버질은 죽음의 문턱에서 겁을 먹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파'에게 잡아먹힐까 소리지를 용기가 없다.
그런 버질을 감싸준 건 자신의 운명을 찾아 떠났다던 루비였다. 기진맥진하여 파를 걱정할 힘조차 없을 때 쯤 버질은 우물에서 구조되면 할 일들을 상상해본다.
영리한 발렌시아는 버질에게 이끌어 줄 실마리를 찾고 아이들은 그 곳으로 향하고 드디어 우물의 뚜껑이 열리며 빛이 보인다.
어디를 가든 분홍색 줄넘기를 챙기는 겐. 집을 나설 때 핀잔을 듣긴 했지만 그 분홍색 줄넘기가 버질을 구했다.
V.S 우연인 듯 하지만 너무도 운명처럼 느껴지는 이들의 관계가 얽히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험이라 생각하니 내 주변을 다시 보게 된다.
세상에 우연은 없어. 운명을 믿지 않을 수 없다는 아이들의 들뜬 모습에 나도 덩달아 들떴다.
버질은 띨띨이라 놀리는 쳇에게 날 또 그렇게 부르면 후회하게 될거라며 진심을 다해 말했다.
가족들에게 거북이라 부르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 게 될 것이다.
발렌시아에게 보낸 안녕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한 마디 말로 삶이 바뀌는 순간들이다.
항상 외로운 악몽에 시달렸던 발렌시아는 탐험가가 되고 싶은 소원을 이뤘고 동업자 친구가 생겼다.
열한 살 아이들을 통해 내 삶을 대하는 태도와 남을 이해하는 배려를 배운다. 생동감 넘치게 빠르게 지나가는 여름 날의 하루가 참으로 따뜻하다. 읽는내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연이 세 번 겹치면 운명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운명을 이어가려면 노력도 필요하다. 다른 듯 닮아있는 이 아이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만들어갈 우주가 궁금해진다.
다른 의미의 우주가 새로웠고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는 나의 우주는 안녕하신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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