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감정과 상관없이 울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아무도 모르게 위로를 받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p14
입은 붉게 웃는데 눈은 검게 운다. 웃고 우는 표정이 섞여 있는 묘한 얼굴, 웃게 하는 마음이나 눈물을 흘리도록 유도하는 슬픈 감정이 애초에 어떤 모양과 질감이었는지, 그러나 수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p35
삶이란 결국, 집과 집을 떠도는 과정이 아닐까.
타인의 집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면 민은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한 시절 거주한 집은 그대로 삶의 일부가 되고, 그런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집은 존재의 시간을 증명한다.
p43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 폐허는 흔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공감하면서 지켜보는 부류는 별로 없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것일까. 적어도 배타심이나 적대감은 없는 구경꾼이란 걸 인정받고 싶었던가.
그토록 하찮고 작은 인정…….
p63
그녀는 연락도 없이 찾아온 아이에게 가장 좋고 가장 깨끗한 것만을 골라 먹일 것이다.나쁜 냄새가 나지않도록 끊임없이
쓸고 닦을 것이며 밤에는 아껴둔 새 이불을 펼칠것이다. 그녀와 단둘이 며칠을 보내면서 아이는 추상적인 고통이 아니라 구체적인 감각으로 채워지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건 곧 위로이기도 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될 터였다.
p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