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여기,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미끼'가 놓여 있네요. 어쩐 일인지 입맛을 다시며 다가오는 이들이 있네요. 그들에겐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향긋한 내음이 되고, 군침을 자극하는 음식으로 느껴지니 탐욕이라는 본능에 충실할 뿐.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철커덕!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네요. 험한 것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덫.
설마 그 덫이 자신의 집이 될 줄이야...
강지영 작가의 장편소설 《프린츠하우스》는 북다에서 펴내는 ANGST(앙스트) 시리즈 세번째 작품이네요. 독일어로 '두려움', '불안', '무서움'을 뜻하는 'angst'에서 이름을 따온 이 시리즈는 오늘날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작가들이 한국문학에서 좀처럼 시도되지 않았던 공포를 기반으로 한 장편소설을 선보이는 장이라고 하네요. 《살인자의 쇼핑몰》을 통해 강지영 작가님의 팬이 된 독자로서 이번에 공포 장르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네요. 역시나 장르를 가리지 않는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주네요.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 아버지는 피로한 표정으로 에르메스 넥타이를 풀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고 말했다. 그는 프린츠하우스의 사진과 설계도면을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곧 이사 갈 집이라고 설명했다. 아주 유명한 독일 건축가가 설계했다는구나. 그래서 이름이 프린츠하우스야. 왕자나 영주를 프린츠라고 부른다더라. 봐라, 투박하지만 빈틈없이 단단한 게 진짜 영주의 성 같지 않니? 웃긴 건 말이다. 거기 살려면 재력은 물론 용모까지 갖춰야 한대. 오늘 네 엄마랑 내가 입주민 면접을 보고 왔어. 공인중개사 말이,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오라가 필요하다는 거야. 하찮은 귀신쯤은 찍어 누를 기세 말이야.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는데, 그냥 명품 두르고 새침 떨면 된다고 하더라. 그런 건 나보다 네 엄마가 더 잘하잖아. 여자들끼리 그릇 얘기, 원예 얘기, 프랑스자수 얘기를 나누더니 금세 친해졌어. 괜히 쫄았지 뭐야.
그렇게 우린 영주의 일원이 되었다. 네 가구가 한 층씩을 차지하고, 왕과 왕비 그리고 왕자처럼 영지를 내려다보며 8년을 보냈다. ··· 여기에 와서야 세상이 비로소 만만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거리는 늘 행인들로 번화했지만, 그들이 잠들어야 할 곳은 다리를 건너고 터널을 지나 다닥다닥 밀집한 아파트촌 어딘가일 터였다. 어느 순간 그들은 내게 풍경을 제공하는 존재가 되었고, 우월감을 선사했다."
(25-26p)
앞서 덫에 걸린 사람은 주인공 김선우, 부모님의 실종 이후 한남동 고급 빌라 프린츠하우스를 물려받아 유일한 주인이 된 인물이네요. 스물네 살의 여성 전승아를 세입자로 들인 후 기괴한 현상에 시달리게 되는데, 지인인 무당 한신의 도움으로 전승아의 과거와 그 안에 숨겨진 존재를 맞닥뜨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네요. 가장 안락해야 할 집이 공포의 공간이 되고 험한 것들이 튀어나오네요. 집을 빼앗겼다는 사실보다 더 끔찍한 건 영혼의 집인 육신을 강탈당하는 것이니, 인간의 몸을 차지한 '그것'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한국의 토속 신앙인 무속의 퇴마의식과 가톨릭의 구마 의식이 혼재되어 극강의 오컬트적 공포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작품이네요. 화려하고 안전해보이는 최상류층의 공간에서 우월감을 느끼며 살아온 선우를 통해 내면 가장 깊숙하게 뿌리내린 어둠의 실체를 굉장히 정교한 방식으로 서서히 조여가며 드러내고 있네요. 단순히 공포 소설이 주는 서늘하고 소름돋는 무서움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저주와도 같은 끝없는 경쟁과 불평등, 고립과 불안이라는 현실 공포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놀라웠네요. 이미 우리는 프린츠하우스와 같은 험한 것들을 본 적이 있네요.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을 쥐고, 무당에 의지하며 온갖 비리를 저지른 그들의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아, 이건 소설보다 더 소설이다!'라고 여길 정도로 그 추악함이 상상 이상이라서 충격적이었네요. 저자는 세상에 없는 악마를 소환했노라고 말했지만 과연 그럴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