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똥. 덩. 어. 리.
매우 충격적인 표현이지만 그리 낯설진 않네요. 극도의 불쾌감과 쓸모없음, 그리고 피해야 할 더러움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최적화된 단어니까요. 근데 이 단어가 디지털 플랫폼이 수익을 추구하며 사용자에게 점점 나쁘게 변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신조어로 등장할 줄은 몰랐네요. '똥'을 의미하는 비속어 shit 를 넣어서 만들어진 신조어 '엔시티피케이션 Enshittification'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고 하네요. 일단 플랫폼 이용자에게 잘해주다가 사업자 고객의 편의를 위해 이용자를 괴롭히고, 나중에는 이용자들의 가치를 몽땅 자기들 몫으로 거둬들이고, 남은 플랫폼은 거대한 똥 더미가 된다는 거예요.
《엔시티피케이션》는 코리 닥터로의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의 해부학'이라고 하네요.
저자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그리고 디지털 권리 활동가로서 디지털 인권 단체인 전자프런티어재단에서 20년 넘게 활동해왔고, 플랫폼의 부패 현상을 명명하는 '엔시티피케이션'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네요. 이 단어가 언론과 대중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2020년대 디지털 문화와 플랫폼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대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고 하네요. 단순히 유행하는 신조어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디지털 환경이 어떻게 망가져가고 있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더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색하게 만드는 트리거 역할을 하고 있네요. 이래서 대상이든 현상이든 명명하기,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명칭을 통해 모호했던 대상의 실체를 인지하고 본질을 명확하게 짚어낼 수 있으니 말이에요. 이 책에서는 엔시티피케이션을 역병으로 보고, 역학 조사를 하듯이 원인과 증상, 부패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우연이 아니라 철저하게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구조적 수순이라고 진단하고 있네요. 여기서 멈췄다면 플랫폼에 속아 착취당하는 현실을 폭로하는 허무한 결론이었겠지만 저자는 시장을 장악한 거대 플랫폼의 독점을 견제할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네요. 냉정하게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은 없지만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고 제대로 좋은 방향으로 되돌리려는 의지와 실천이 뒤따른다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네요. 나빠지는 건 한순간인데 되돌리는 건 더디고 힘든 여정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