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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즐의 서재
  • 모자 인문학
  • 고호성
  • 25,200원 (10%1,400)
  • 2026-07-07
  • : 90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단지 답답하다는 이유를 꺼려했던 모자.

최근 머리에 잘 맞는 모자를 써보고 나서야 모자가 싫은 게 아니라 안 맞는 모자가 문제였음을 알게 됐네요. 단순히 사이즈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 생김새를 비롯한 다양한 특징을 고려하지 않는 밋밋한 모자들 때문에 모자의 진짜 매력을 잊고 있었네요. 그동안 패션 아이템으로만 생각했는데 모자에 깃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나왔네요.

《모자 인문학 : 모자를 보면 시대가 보인다》는 시대의 얼굴이자 작은 문화의 그릇이었던 모자 이야기를 담은 책이네요

저자에게 '모자'란 우연과 필연이 겹친 평생의 동반자라고 하네요. 종합무역상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가 우연히 선배의 야구모자 사업을 도운 것이 인연이 되어 35년을 모자와 함께했으니, 모자에 관한 이야기 속에 저자의 인생도 녹아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자신의 인생을 대표할 수 있는 물건 한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는 모자가 만든 역사적 장면들, 멋과 실용을 겸비한 클래식 모자의 탄생과 변화, 문학과 예술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자, 스포츠와 음악, 대중문화가 만든 야구모자에 관한 숨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네요. 여기에 소개된 모자들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탄생한 모자 중에서 인류문화사에 큰 의미를 지닌 것들로 골랐다고 하네요. 명칭은 익숙하지 않지만 사진으로 보면 익숙한 모자들이네요. 신사용 모자인 중절모의 애칭인 페도라, 여름 모자의 귀족 파나마모자, 종 모양의 모자로 모더니즘의 여왕 클로슈,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높고 단정한 탐햇, 일명 '보울러' 신사들의 패션을 상징하는 중산모, 아일랜드의 모자 플랫 캡,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모자 볼사리노,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 모자인 스텟슨, 혁명가 체 게바라가 썼던 베레모, 현대 모자들인 야구모자, 트러커 캡, 버킷 햇 등 다양한 모자들을 만날 수 있네요.

우리가 파나마모자라 부르는 밀짚모자는 이름과 달리 파나마가 고향이 아니라고 하네요. 남미 에콰도르에서 생산한 밀짚모자를 파나마에 싣고 와서 판매한 것인데, 과거 미국의 골드러시가 시작되던 시절에 남미의 노동자들이 미국 서부로 몰려 들어갈 때 꼭 파나마를 거쳐가야 했고, 그때 그곳에서 샀던 밀짚모자를 파나마 모자라고 부르면서 미국에 널리 통용된 것이래요. 특히 1906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세기의 대공사였던 파나마 운하 건설에 공사 독점권을 확보하고자 파나마를 방문했을 때 파나마모자를 쓴 루스벨트가 건설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각국의 신문 1면에 크게 실린 것이 엄청난 광고 효과가 되어 전 세계에 유행을 퍼뜨리는 계기였다네요.

똑같은 모자라고 해도 문학이나 예술에서 모자는 감춰진 세계를 표현하는 강력한 모티브로써 다양한 의미를 보여주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 그림일 거예요. 박완서의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에서는 폐암으로 떠난 남편의 모자가 아픔인 동시에 젊은 날에 대한 추억으로 그려졌네요. 이 소설의 끝은 다음과 같네요.

"그래도 여전히 틈바구니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지 않는다. 그가 남긴 모자가 나에겐 물질 이상이듯이 틈바구니란 말 또한 말뜻 이상의 것, 한없이 추구해야 할 화두임을 면할 수 없다." (186p)

우리에게도 이 책은 '모자'가 더 이상 머리에 쓰는 모자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류가 풀어내야 할 미래를 품은 또 하나의 문화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네요. 모자라는 독특한 렌즈로 들여다보는 인류의 발자취, 다채롭고 유익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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