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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즐의 서재
  • 선과 지브리
  • 스즈키 도시오
  • 16,200원 (10%900)
  • 2026-06-30
  • : 450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삶의 틈새를 위한 책이 나왔네요.

틈새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빡빡하게 채워진 일상이나 관계 속에서 비어 있는 공간이나 시간을 의미하네요.

비어있음, 그것은 결핍이 아닌 여유이자 가능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선과 지브리》는 '지브리를 통해 만나는 불교의 지혜'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네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스튜디오 지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함께 지브리의 핵심 3인방인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가 일본의 선승들과 나눈 대담집이네요. 이 책에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모노노케 히메》,《마녀 배달부 키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반딧불이의 묘》 등 명작들을 대화의 소재로 삼고 있어요. 작품 속에 녹아있는 지브리 거장들의 세계관과 철학을 삶과 죽음, 비움이라는 불교적 사유로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네요. 대담자는 류운지의 호소카와 신스케 주지 스님, 엔가쿠지 관장 요코타 난레이 노스님, 아쿠타가와상 작가이자 후쿠주지 주지인 겐유 소큐 스님이네요.

첫 장에 달마도 그림이 나오네요. 달마대사의 부릅뜬 두 눈이 뭔가를 강렬하게 응시하고 있고, 그림 왼편에는 '직지인심 直指人心'이라고 적혀 있네요.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 즉 수행자가 성전의 매개 없이 바로 성불한다는 선종의 핵심 가르침을 의미하네요. 선불교의 창시자인 보리달마의 모습으로 여기에 수록된 그림은 에도 시대의 선승 하쿠인(1686~1769)의 서화이며, 다수를 소장한 도쿄 류운지를 방문했을 때 주지인 호소카와 신스케 스님과의 대담 전에 하쿠인의 작품을 견학했다고 하네요.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와 호소카와 신스케 스님의 대담이 매우 인상적이네요.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그 의미가 불교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놀라웠고, 바로 그 점이 지브리가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요즘 세상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다니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관객은 학생이 아니기에 뭔가를 가르치려들면 도망가기 마련인데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사로잡았으니 말이에요. 가르침을 받는 줄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깨달음, 그것이 불교의 지혜인지도 모르겠네요.


◆ 호소카와 : 우리는 종종 깨달음을 달에 빗대어 말합니다. 가르침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죠. 손가락에 주목하면 중요한 달을 영영 보지 못하고 말죠.

스즈키 : 세상에는 그런 일이 많죠.

◆ 호소카와 : 스즈키 씨가 참여한 광고도 '손가락'입니다. 카피라이터인 이토이 시게사토 씨와 스즈키 씨는 지브리 작품에 훌륭한 영화 캐치카피를 수없이 만들었는데 스즈키 씨는 달에 눈이 가도록 가리키는 방법을 연구해 오셨을 겁니다.

● 스즈키 : 그 부분은 분명히 생각합니다. 캐치카피는 어디까지나 영화를 보게 하는 겁니다. 미야 씨가 만든 영화는 인간의 약점을 제대로 인정합니다. 인정한 다음, 약한 아이도 때에 따라서는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죠. 사람들이 보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위해 말을 짓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영화 《바람이 분다》의 캐치카피는 '살아야' 입니다. 이는 어쩌다 제가 붓으로 쓴 글을 홍보 프로듀서가 보고 "이걸로 하죠"라고 해서 된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힘든 일이 정말 많지만 ,그래도 살아야'라는 거죠. 이런 사회에서는 다들 힘들어요. 그에 대한 격려 정도는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그러나 집착하지는 말자고 항상 다짐합니다. 결좌적으로 많은 사람이 봐주면 좋지만 '정말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전해지면 된다'라는 마음을 가지자고 다짐합니다.

◆ 호소카와 : 그렇군요. '전하는 것'과 '전해지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하는' 것은 일방통행이나 '전해지는' 것은 상호 작용이죠. 예컨대 하쿠인이 족자라는 형태로 전한 내용에 보는 사람이 반응하지 않으면 '전해지지는' 않은 거죠. 저도 늘 '전해지는' 걸 의식하며 이야기합니다.

● 스즈키 : 그 점은 스태프들에게도 수없이 말합니다. "말해뒀는데요"라는 건 안 된다고요. 상대가 이해할 때까지 말하지 않으면 전했다고 할 수 없잖아요? 상대가 이해해야 '전해진' 겁니다. 연락했거나 보고했다는 말은 의미가 없어요.

◆ 호소카와 : 그런데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살아라'이고 《바람이 분다》에서는 '살아야'이네요. 스즈키 씨가 하쿠인을 놓고 캐치카피를 쓴다면 뭐라고 하실까요?

● 스즈키 : 음, '살아 볼래?' 정도 아닐까요? '세상은 버릴 만한 곳이 아니야. 그러나 노력은 좀 해야지'라는 느낌으로 저는 받아들였는데···.

◆ 호소카와 : 마사오카 시키가 죽기 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선의 깨달음은 어떤 순간이라도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어떤 순간이라도 그저 살아내는 것임을 깨달았다." 저도 전에는 선은 죽음을 가깝게 받아들인다, 즉 언제 죽어도 되도록 사는 거라고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저 살아내는 게 훨씬 더 존엄하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25-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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