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노인이 된다는 건
내가 누리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대비하지 못한 저주이기도 하다."
(13p)
수전 구바 작가의 《피날레》 첫 문장이네요.
참으로 공감할 만한 표현이네요. 노인이 된다는 건 오래 살았다는 의미이니까 장수라는 축복을 받은 것인데 정작 당사자에겐 그리 유쾌하고 행복한 일만은 아니니까요. 노년기는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요. 보통은 은퇴와 공적 연금을 수령하는 예순다섯 살을 노년기의 시작으로 보는데, 직업에 종사하는 기간이 연장된 경우에는 노년기를 일흔이나 여든으로 보기도 하네요. 어쨌든 독립적인 경제 활동을 하고 있으면 스스로 젊게 느끼기 때문에 우리의 심리적 나이는 숫자상의 나이보다 훨씬 더 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육체노동이나 의학적 사건을 겪는다면 연대기적 나이보다 훨씬 더 많게 느낄 수도 있네요. 몸이 여기저기 아프면 긍정적 감정을 갖기 어렵지만 노인의 내면세계가 노쇠와 죽음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고, 노년기가 삶의 가장 창의적인 단계가 될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네요.
특히나 저자는 2008년 예순셋의 나이에 말기 난소암 진단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 암 생존자로서 노년의 시간을 살고 있기에 용맹한 올드 레이디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책에서는 아홉 명의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노년에 따라오는 걸림돌을 헤쳐나가면서도 어떻게 창의력을 유지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네요. 저자가 다룬 인물 중 조지 엘리엇은 노년기에 이르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장수라는 가능성 낮은 일을 이뤄냈네요. 콜레트, 조지아 오키프, 이자크 디네센, 메리앤 무어, 루이즈 부르주아, 메리 루 윌리엄스, 궨덜린 브룩스, 캐서린 더넘에 대해 '연인들', '이단아들', '현자들'이라고 분류했는데 이것은 노화가 가져오는 여러 고통에 대한 해독제의 원료가 될 만한 역할들을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이 역할들은 역사적으로 팽배했던 편견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기도 하네요. 노년기의 연인은 음탕한 과부, 말년의 이단아는 마녀, 쭈그렁 할멈, 노년의 현자들은 학교 선생, 여장부, 마녀, 추녀, 전쟁도끼 등 저질스러운 꼬리표를 붙이고 모략했는데, 이런 고정관념을 뒤엎은 여성들이 바로 여기에 소개된 인물들이네요. 예술적 야망은 수명이 길다는 사실을 매혹적으로 증명해냈으니 말이에요. 그동안 유명한 여자 예술가 중에는 고령까지 장수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여자가 예술가로 산다는 건 목숨을 위협하는 모순들에 걸려들기 쉬운 일이었으니 노년까지 살아남아 창조성을 보여준 인물들은 존경받을 자격이 있네요. 저자의 말처럼 삶의 마지막 단계를 정신 번쩍 드는 각성의 시간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놀랍고 경이로운 "그랜드 피날레"를 보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