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인생에서 딱 한 번, 꽤 오래 전에 좋아하는 작가님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그때는 이상하게도 혼자 고민하던 내용을 적어보냈네요.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고민 상담이라니, 왠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라는 바람이 컸던 것 같아요. 원하는 답장을 받았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책 한 권이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죠.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서간집이네요.
이 책은 시인을 꿈꾸던 사관생도 프란츠 카푸스라는 젊은이가 우연히 교정에서 시집을 읽는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 시집의 저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자신의 학교 선배임을 알고 편지를 보낸 덕분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네요.
"그렇다면 그 르네 릴케라는 생도가 시인이 된 거로군. ··· 그렇게 해서 나는 야위고 창백한 얼굴을 가졌던 어느 한 소년에 관해 알게 됐다. ··· 어째서 내가 내 습작 시를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 보내 그의 평을 들어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가. 그 당시 스무 살도 채 안 됐고, 내 성향과는 전혀 딴판인 듯한 직업 세계에 이제 막 첫발을 내딛던 참이었다. 그런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의 축제를 위하여』를 쓴 시인이길 바랐다. 원래는 시만 몇 편 보내려고 했으나, 어쩌다 보니 내 솔직한 마음까지 거리낌 없이 다 털어놓은 편지도 함께 보내게 됐다. 여태껏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 후로도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8p)
여기엔 릴케가 쓴 열 통의 편지들이 담겨 있어요. 놀라운 점은 릴케가 젊은이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지헤로운 조언을 해줬다는 거예요. 시인의 입장에서는 답장을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편지들 중 하나였을 거예요. 그런데도 의례적인 답장이 아니라 열 통의 편지로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분량으로 보나 내용면에서도 진심 가득한 글을 써주었네요. 다정하고도 사려 깊은 릴케의 태도가 느껴졌어요. 첫 번째 편지부터 열 번째 편지까지 릴케는 시인 지망생인 젊은이에게, '젊은 시인에게', '친애하는 젊은 시인이여'라며 '시인'이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있어요.
"당신은 당신의 시가 훌륭한지를 묻습니다. 지금은 제게 묻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했겠지요. 당신은 여러 출판사에 당신의 시를 보내 봅니다. 당신의 시를 다른 시와 비교해 봅니다. 그리고 어떤 편집자가 당신의 작품을 거절하기라도 하면 당신은 불안해졌겠지요. 자, (제가 당신에게 조언해도 괜찮다고 하셨으니) 이 모든 행동을 그만두십시오.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행동을 지금 당장 멈춰야 합니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해 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당신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 하지 못합니다.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당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십시오. 당신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끔 하는 게 무엇인지를, 그 이유를 면밀하게 살펴보십시오. 이것이 당신 내면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려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글쓰기를 포기할 바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까. 스스로에게 솔직해져 보십시오." (15p)
굉장히 놀라운 통찰이네요. 비교하지 말 것,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 것,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것.
무엇보다도 글를 쓰는 이유에 대해 일말의 주저함 없이 '그래야만 한다'라는 마음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인생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본인의 확신과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되새기게 만드네요. 릴케의 말처럼 목숨을 걸 정도의 간절함이 있다면 누구의 충고 없이도 자신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친애하는 시인이여, 당신께 최대한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마음속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인내심을 가지십시오. 의문 역시 아주 낯선 언어로 쓰인 책들이나 굳게 닫힌 방처럼 사랑하십시오. 지금은 해답을 찾지 마십시오. 아직은 이들을 당신 삶 속에 녹여 낼 수 없기에 아마도 당신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지금은 질문들을 당신 삶 속에 녹여 내십시오. 그러면 먼 훗날,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그 해답들 속으로 들어가 살게 될 것입니다. ··· 당신 내면으로 당신 자신을 끌고 나아가십시오." (42p)
릴케의 편지를 읽으면서 당연히 릴케의 나이가 카푸스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첫 편지가 오간 1902년 당시 카푸스는 열아홉 살이고, 릴케는 20대 후반이었다고 해서 무척 놀랐어요. 왜 그가 20세기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이자, 영혼의 시인으로 불리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네요. 특히 인간적인 따스한 면모를 발견하는 계기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