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솔직히 고백하자면 '천문학자'보다는 '쓸모없음'이란 단어에 끌려서 이 책을 읽게 되었네요.
어릴 때부터 쭉 '쓸모'에 연연해왔고, 어른이 되어 세상에 치이다 보니 자신에 대해 '쓸모없음'을 느꼈는데, 문득 '쓸모는 누가 정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언가가 되어야만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니 나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알게 되었네요. 남들이 쓸모없다고 떠들어도 나한테 중요하면 쓸모있는 거니까, 함부로 '쓸모'를 운운하지 말자고요.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는 우주먼지 지웅배의 첫 우주 에세이라고 하네요.
저자는 천문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유튜브 채널 <우주먼지의 현자타임즈>를 운영 중이라고 하네요. 그동안 천문학 관련 책들을 다수 집필했지만 에세이는 처음이라, 마치 낯선 행성의 대기에서 숨쉬려고 발버둥 치는 일 같이 힘들었다고 고백하네요.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어려우니 맨날 천문학과 은하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으로서 평소에 품고 있던 질문들과 사소한 생각을 풀어냈다고 하네요.
천문학자로서 나는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가, 과학의 적은 누구인가, 과학자와 일반 시민 사이에 인식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였을까, 우리는 왜 우주가 우리에게 쥐어준 어중간함이라는 행운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는 걸까, 대체 사람들은 이토록 아름다운 밤하늘, 우주에 별로 관심이 없을까, 왜 천문학자에게 낭만을 강요할까, 천문학자의 미덕은 무엇일까, 인간 이후의 우주는 무엇으로 채워질까, 우주적 쾌락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천문학자여서 다행인 순간은 언제일까, 천문학자를 괴롭히는 삼체 문제란 무엇일까, 라플라스 악마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답을 만날 수 있어요.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한 생각들을 읽다보니 우주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우리에게 천문학의 쓸모란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찾아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네요.
"사실 '천문학이 우리에게 쓸모없다'고 할 때, 여기에는 중요한 명사 하나가 빠져 있다.
'당장' 쓸모가 없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비록 지금의 연구가 당장은 적당한 쓸모를 찾지 못하지만, 분명 수백 년이 지난 뒤에는 꽤 괜찮은 쓸모를 찾게 될 거라 확신하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16-17p)
"지난 수십 년간, 국가 지도자들이 주목하는 과학기술에 '과학'은 없었고, 방점은 '기술'에만 찍혀 있었다.
정부 정책에서 과학은 그저 기술이라는 단어를 멋지게 포장하는 형용사처럼 그 앞에 붙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과학과 기술은 항상 띄어쓰기 없이 한 단어로 묶여 있다.
나에게 과학기술이라는 단어는 '마라탕후루' 만큼 괴상한 합성어다." (25p)
"다중우주는 참 얄궂다. 솔직히 말해서, 치사하고 야비한 가설이다.
다중우주는 우리 우주 바깥에 또 다른 우주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린 우리가 사는 우주만 관측할 수 있다.
··· 천문학은 관측의 과학이다. 아무리 수학적으로 완벽하고 매력적인 가설이더라도, 아무리 정황적 증거가 쏟아지더라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100퍼센트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까다로운 천문학자에게 다중우주는 탄생부터 글러먹은 가설이다. ··· 천문학자들도 마음 한 켠에는 우주가 유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을 품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천문학자 대다수에게 다중우주 가설은 흥미로운 '수학적 오락'일 뿐이다. 빅뱅 이론과 동급의 또 다른 우주론인 양 대접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천문학자들이 이 허황된 개념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다중우주 가설이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이론들과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의 색다른 화해를 도모하기 때문이다." (63-64p)
"시뮬레이션 속의 가짜 우주를 누비다 보면 마치 내가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된 것 같다. ··· 시뮬레이션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아무리 사실적이고 간편하더라도, 컴퓨터 모니터 속에 펼쳐진 세상은 진짜를 흉내 낸 가짜다. 우리 머리 위에 진짜 세계는 항상 펼쳐져 있다. 진실을 마주하고 싶다면 고개만 들어올리면 된다. 오색찬란한 거짓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206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