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귀한 자식일수록 여행을 보내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 말의 기원을 찾았네요. 그랜드 투어,16세기 영국 귀족 자제들이 유럽 대륙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젠틀맨이 되기 위한 필수 코스로 변모해갔다고 해요. 최초로 '그랜드 투어'란 단어가 책자에 등장한 것은 17세기 후반, 유명한 그랜드 투어 동행교사였던 리처드 라셀스의 《이탈리아 여행 혹은 이탈리아 전 국토 답사》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18세기는 대학 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는 목적의 그랜드 투어가 유행하면서 여행자들의 연령대도 10대 후반으로 내려갔고, 영국 정치가 필립 체스터필드 경은 그랜드 투어를 떠난 아들 필립 스탠호프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가 《체스터필드가 아들에게 쓴 편지들》이라는 제목으로 1774년 런던과 더블린에서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800년에는 번역 출간되어 세계적 명성을 얻으면서 훌륭한 고전이 되었네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한 김상근 교수는 2025년 은퇴 후 한 유력한 기업 가문에서 자녀들의 그랜드 투어의 동행을 부탁 받았고, 이 책은 그 준비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하네요. 부모가 미성년 아이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나거나 청년들이 떠나는 배낭 여행은 많이 봐 왔지만 동행교사가 함께 하는 그랜드 투어는 색다르네요. 공교육 과정에도 그랜드 투어가 생긴다면 어떨까요.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네요. 답답한 교실에서 벗어나 역사적 현장과 미술관을 직접 둘러보며 역사, 철학, 사상, 예술을 공부한다면 저절로 학구열이 높아질 것 같아요.
《길 위에서 인생을 묻다》는 필립 체스터필드가 평생 아들에게 보낸 편지 448통 가운데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는 편지 52통을 엄선하여 전문적인 번역으로 편지의 내용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옮기고,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을 더하여 만들어진 책이네요. 책 속에 수록된 사진은 책의 원고를 읽은 김도근 작가가 본인의 해석대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찍은 것이라고 하네요. 체스터필드 가문이 대대로 살았던 런던의 블룸스베리 스퀘어 지역의 사진으로 시작해 체스터필드가 머물렀던 영국 바스의 집, 라이프치히대학교 캠퍼스, 런던국립초상화미술관에 소장된 조지 헤이터의 <영국 하원>, 드레스덴의 츠빙거궁전, 베로나 원형 경기장, 비첸차에 있는 팔라디오의 건물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등등 편지에 등장하는 장소, 그랜드 투어의 현장을 담은 사진들이라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네요. 사랑하는 자녀에게 진정한 배움과 인생의 지혜를 전하고자 애쓰는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네요. 품격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한 실질적인 조언들이 담겨 있네요.
"베로나에 있는 원형 경기장은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니 자세히 살펴보거라. 베로나와 함께 비첸차에도 중요한 건물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중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건물은 뛰어난 감각과 구조로 진정한 고전적 건물이다. 건축의 다섯 가지 양식을 공부하기 위해 서너일을 투자한다면, 일반적인 비례의 원칙을 포함해서 네가 알아야 할 고전 건축의 모든 것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 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늘 깨달아야 한다. 배우고 익히면 익힐수록, 너는 더 많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235-237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