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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즐의 서재
  • 암전들
  • 저스틴 토레스
  • 16,920원 (10%940)
  • 2025-10-20
  • : 4,705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어느 날 이 책이 완성됐다.

몇몇 친구들에게 원고를 보여주자, 그들은 이렇게 물었다.

잠깐만, 이거 소설이야? 아니면 후안이 실제 인물이야?

나는 이런 질문의 답을 미리 준비했다. 모호한 것이 모조리 해소될 필요는 없어, 내가 말했다.

아, 관둬. 그들은 답했다. 그들은 내가 정신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ㅡ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0대였을 때 ㅡ 알았고, 독자들이 이 허구의 서사를 내 실제 삶을 이루는 대략적인 사실들과 혼동해 후안이 내가 그곳에서 지낸 시간 만난 누군가라고 추측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런 추론을 긍정할 생각도, 부정할 생각도 없다. 어차피 독자라면 후안 같은 인물이 존재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볼테르가 신에 대해 말한 것처럼, 내가 어쩔 수 없이 그를 만들어 내야 했으리라고 금세 추론하지 않을까? _ 「일종의 작가 후기 」 중에서 (392p)

검은 줄로 가려진 문서와 기괴한 사진으로 시작되는 소설 《암전들》은 저스틴 토레스의 작품이에요.

책 표지에 '저스틴 토레스 장편소설'이라는 문구가 아니었다면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를 고민했을 것 같아요. 단순히 소설의 영역으로 분류하기에는 - 물론 퀴어의 세계를 모르는 이들에겐 상상의 영역일 수도 - 내밀한 진실을 담고 있어요. 저자는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이 허구의 인물이지만 후안이 갖고 있는 『성적 변종들 : 동성애 패턴 연구』는 실존하는 연구서라고 밝히고 있어요. 20세기 초 퀴어 사회학자 잰 게이가 성소수자들의 인터뷰를 수집하여 당시 주류 사회에서 '변종'으로 여겨지던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를 기록한 책이에요. 열일곱 살의 '나'는 후안이라는 늙은 남자를 주립 정신 병원에서 18일간 만났고,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후안을 찾아갔어요. 후안은 '나'를 보자마자 '네네', 스페인어에서 어린 소년을 부르는 애정어린 애칭으로 불렀어요. 해골처럼 앙상한 몸으로 임종이 가까워진 후안은 자신이 해온 작업을 계속 이어가달라는 부탁을 했고, 수많은 자료와 기사, 사진, 메모 그리고 페이지 대부분이 시커멓게 칠해진 두꺼운 책 『성적 변종들』 두 권이 있었어요. '나'는 성적 변종들에 관해서, 잰 게이에 대해서, 이 페이지를 전부 검게 칠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고, 후안은 지난 10년간 나와 내 삶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했어요.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 떨어져 있던 10년이라는 시간의 공백과 『성적 변종들』 에서 삭제된 내용들을 조금씩 채워가고 있어요.

「검게 칠해지기 전에 이 책을 본 적 있으세요?」

「딱 한 번, 잠깐이지만 있었지. 도서관에서 특별 열람을 신청해야 볼 수 있었고, 관외로 가지고 나갈 수 없는 조건이었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사서가 선 채로 나를 지켜보았는데, 네네, 혐오감이 담긴 눈길이었지. 하지만 나는 우리가 가진 이 책, 내가 찾아낸 모습 그대로 새까맣게 지워진 이 책이 더 좋아. 깨달음의 짧은 시들로 가득한 이 책 말이야. 헨리 박사의 지침이 무엇이었든 이에 대항하는 서사인 셈이지. 책을 순서대로 읽는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 아무 페이지나 열어젖히면 그 속에 과거로부터 솟아오른 어떤 삶의 스케치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하나하나가 등장한 인물이 극복했거나 극복하지 못했음을 토로하는 단 하나의 증언인 것을.」 (116-117p)

동성애나 퀴어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던 시대에 이루어진 획기적인 연구였으나 성소수자들을 '성적 변종들'이라는 용어로 정의함으로써 병적인 존재로 낙인 찍고 있어요. 검게 칠해서 삭제해버린 내용들, 거기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가 그랬는가...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와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퀴어의 세계를 엿볼 수 있어요. 암전 blackouts 블랙아웃이란 일시적 기억 상실, 특정 공간의 조명 장치를 모두 꺼버리는 것, 글씨를 검게 칠해 지우는 것 등 여러 의미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면서 모든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 위에 그어진 검은 줄, 누가 새까맣게 지워버렸는지 이제 알겠느냐고, 그들은 되묻고 있네요. 검은 책 속에서 그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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