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는 사랑의 사악한 쌍둥이
임소운 2025/04/18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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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 한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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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0
내 기억 속에서 아홉 살은 유난히도 흑백 사진 같다. '수학 익힘책 32쪽까지 풀고 엄마 싸인을 받아오라’는 선생의 말에 할머니에게 대신 부탁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꼭 엄마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줄 알고 불안에 떨었던 아이. 엄마가 펜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느꼈던 절망감. 어리석을 정도로 어렸던 아이. 어렸기에 어리석었던 아이. 나는 아직 그 느지막한 오후에 끼어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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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문체나 문학적 지문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의 곳곳에 배어있는 어느 스승이 남긴 명언이 있다. 그는 (아마도) 아직 살아있을 것이고 죽어도 내 지문에 남아있을 테지만 나는 그를 내 지문 속에서 발견하는 게 더 좋다. 그는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고 했다.
종종 증오에 대해 미친듯이 생각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감정에 대한 나의 생각은 곱씹음이자 분석이다. 법이나 책에서 본 그대로를 읊조리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증오의 근원을 아주 오랫동안 분석해왔고,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또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덜 노력하고 더 잘나가 보이는(보이는 것보다 잘 나가지 않을 수 있음) 사람을 보면 욱하는 성정이 엄마에게 온 것인지 할머니에게 온 것인지 적어도 32년 이상 되새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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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때는 엄마가 내 편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동갑내기에게 정신적으로 짓밟힌 이야기를 하는 건 수치스러웠다. 일기장에는 (엄마를 믿고) 그 아이가 나와 내 가정을 모욕한 기록을 그림과 함께 남겼다. 그 아이가 나에게 남긴 진짜 모욕은 오랫동안 내 안에만 존재했다. 그때는 그래도 배후가 든든했다. 이른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비밀이 많아졌다. 그리 오래가지도 못할 친구를 만들어서 비밀을 털어놓고야 마는 습성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엄마가 내 비밀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을 때?
한때는 타인으로서의 여성을 대표한 적이 있는 엄마는 내가 내 얘기를 안 한다고 한 적이 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밝은 쪽이든 어두운 쪽이든 엄마와 공유할 수 없다. 어지간해서는 이해시키고자 하는 승부욕도 발동할 법한데, 아주 오래전부터 체념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극적인 순간도 지나온지 오래되었다. 상처를 다시 벌리지 않을 것이고, 그와 별개로 완전히 아물지는 않을 상태로 계속되겠지. 나는 우리 관계에 완전히 무관심한 상태에 결코 도달할 수 없겠지. 엄마는 아직도 나를 ‘첫사랑’이라고 부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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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영 작가는 글을 통해 엄마의 존재를 복원해냈다. 끝내 애틋하지 못하더라도(그러나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 이영숙이 자신에게 남긴 흔적을 바라보며 증오 속에 묻힌 사랑을 발굴한다. 이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친 되새김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읽고 쓰는 일에 타고난 재능은 그 소유자가 자신의 근원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 아래에, 또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끝없이 생각해야만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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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위해 내 일상을 읽고 쓰는 것 위주로 정비하고, 후순위에 있는 것들을 가지치기하는 과정. 책을 몇 권 읽고 글을 몇 편 써냈다는 결과보다도 그 과정이 나는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마음과 몸을, 시간을 바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지게 했다. -141p
그 불행과 다정이 뒤섞인 시간들을 글로 쓴다는 것은, 그때는 묻어두기 바빠 알지 못했던 내 감정들을 꺼내어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색을 입히고 냄새를 씌우면서 그때의 내가 되는 일이었다. 나의 불행을 기억하고 쓰는 일. 쓴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닐지라도, 불행을 껴안을 때 비로소 내 안에 숨죽이고 있던 시간들이 숨쉴 수 있음을 느낀다. 불행이 내뱉는 숨에 의지하여 써내려갈 수 있는 시간과 글이 있다면 여전히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좋을 것이다. 불행이 숨이 되고 글이 되어 내쉬어지는 날들이 더 많이 오길. -2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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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지문을 오래 보고 싶다. 마침내 엄마라는 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충분히 사유했기에 이 복잡한 사랑을 끝내 해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이기에도 엄청나지만 그 속이 더 엄청난 작가가 등장했다.
(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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