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이미지 정치에 단호하게 맞서다
임소운 2025/03/1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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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무의식 속에서 이슬람과 한없이 연관 짓는 단어 다섯 개는? 분노, 분리, 자살, 나쁜, 죽음.
그 순서로요?
음, 사실 죽음이 첫 번째였죠. -218p
돈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 그들도 다른 모든 사람처럼 피해를 입을 거야. 백악관에 있는 개자식도 말이야, 심장병에 걸렸을 때 누구를 불렀지? 네 아버지였다. 킹 에드워드 의과 대학 수석. 바로 네 아버지. -472p
극작가인 아야드는 기독교의 땅에서 사는 무슬림의 미국적 딜레마와 고통을 글에 담아내어 퓰리처상을 받고 미국의 대표적 무슬림 출신 작가로 부상한다. 하지만, 그는 무슬림의 배타성과 폭력성, 미국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며 양쪽에서 배척당한다. 파키스탄에서는 그의 글이 신성 모독법을 위반했다며 입국을 금지하고, 미국에서는 911 공범 취급을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515p, 옮긴이의 말
*
도널드 트럼프(의 주치의의 아들), 2세대 이슬람계 이민자, 갈색 피부(그런데 인도계가 아닌), 극작가(연극과 생활의 상관관계여-), 아슬아슬하게 책임을 면한 정크본드 수혜자(?), 방종한 시기를 보낸 (헤테로 남성)예술가, 그(들)은 이곳저곳에서 막다른 길에 갇혀있던 뇌세포를 어딘가에 통합시켰다. 잠깐.
그런데 이거 메타픽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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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라는 자의식은 가끔 필요하지만 가끔 독이 된다. 명예나 부는 유의미한 수준으로(가져본 적은 없지만) 확보하기 전에는 잠재적 욕망(그런데 어지간한 은둔자가 아닌 이상 드러나는)이기에 동기부여를 해주기도 하고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민자(보다는 그 후손, 1.5세대 이상의 원어민)에 대한 부러움은 그들을 연구(?)하면서 놀라움(경이 혹은 경악)과 존경과 좌절(?)로 이어졌다. 아야드 악타르가 ‘강조’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이슬람계 ‘남성’이기에 겪어야만 했던 일과 그럼에도 겪지 않아도 되었던 일은 복합적인 고통의 시간이었다. 은사님을 앞세워(?) 찰진 스토리텔링으로 극사실주의(그런데 살짝 몽환적인) 논픽션(인가?) 장편소설에 정신없이 빠져들게하는 기술은 그 내용의 만족도(어쨌든 만족함)에 대응하는 바람직한 그릇이었다.
측근들의 비리와 부정을 심하게 폭로(!)하기에 픽션이어도 이상한 이야기를 마치 전래동화인양 풀어놓는 대담함은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저자의 재능이 뛰어날수록 관전이 안 되는 것도 병인가?) 애도하는 노래인 애가, 앨레지를 바칠만큼 사랑한 나라를 어디라고 콕 찝어서 말할 수는 없다. (여기까지 책에 실린 ‘토론을 위한 질문 및 주제’를 참고한 감상이다.)
미국의 이면을 볼만큼 봤다고 생각하는 것과 공들여 수집한 날것의 서술을 직면하는 건 다른 차원이었다. 여전히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조차 촘촘하게 비하되는 갈색피부에 대해 알아내야 할 것이 많다. <블랙리스트>, <브리저튼>, <굿 플레이스> 등 드라마에서 긍정적 측면을 보기도 하지만 블록버스터가 잡아낼 수 없는 세부사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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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집착해요. 그래서 서구가 우리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을 바로잡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죠.
-222p
사흘 후 그녀에게 전화가 왔고, 우리는 미드타운의 한식당에서 만났다. 나는 그녀와 마주 앉아 한 시간 동안 그녀가 소고기가 안 들어간 비빔밥을 먹으며 들려준 성매매 관련 이야기를 메모했다. 나는 그녀를 두번 더 만난 후 마침내 어느 날 저녁 우드사이드에 있는 그녀의 집 거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화장실 밖에 놓인 책장에서 아버지 사진을 발견했다. -394p
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은 축소되고, 역사학, 철학, 문학, 음악, 사회학 관련 학과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도서관들은 해마다 새 책을 들여오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산이 줄어드는 걸 지켜보아야 했다. -4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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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드 악타르 덕분에 책더미에 깔린 리베카 솔닛과 사치 코울의 에세이,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수록된 장영은의 <여성, 정치를 하다>, 한글판과 영어판을 소장하고 있는 타네히시 코츠까지 소환하게 됐다. 새삼 다양하고도 갈길이 먼 독서목록을 한번 더 점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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