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의 작품 중 안 읽은 책인 것 같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아무래도 뭔가 기억 속에서 겹치고 있었다. 본 듯 아닌 듯. 스키와 관련된 내용을 본 것 같은데, 명확하지가 않네 하면서. 집에 같은 책이 없는 걸로 봐서 봤다면 빌려 봤다는 것일 테고, 리뷰가 남지 않은 걸 보면 안 읽은 것일 수도 있고, 아~~~ 그냥 읽고 말자, 이왕 산 책이니, 읽는 내내 갈등했던 책.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었던 책.(끝까지 읽어도 책의 기억을 불러들이지 못해 그만 잘 읽었다고 결론 내려놓고.)
이 리뷰를 쓰기 직전에 검색을 해 봤다. 내가 본 것은 '질풍론도'라는 작품이었더라는 것. 배경이 겨울 스키장이었으니, 내 기억력이 이만큼이나마 살아 있었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내가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뭘 또 굳이 두 번씩 읽을 만큼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으니. 그랬더라면 많이 안타까울 뻔했을 것이다, 이 시간에 다른 책을 읽을 걸 하면서.
권력자들의 음모가 질릴 정도다. 사람 몇몇만 모이면 이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기라도 한 것인지. 좀더 이익을 챙길 쪽으로, 내 욕심 챙길 쪽으로 서로서로 궁리해서 도모하는 현상. 그게 회사든 학교든 나라든 국제 사회든. 하기야 우주 개방이 된다면 우주 사회라고 달라질 게 있을까 싶은 한탄도 들고.
우리 인간에게 생존 본능을 넘어서는 욕심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인류의 시작부터? 정착하면서 사유재산을 갖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쌓아 놓고 죽을 때까지 풍요롭게 쓰고 싶다는 그 자각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 때문에 문화가 시작되기는 했겠지만 문화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 살자고 남 죽이는 방편을 마련하다 이루어놓은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참내, 소설 한 편 읽다가 도저히 안 보고 안 들을 수 없는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연결시키다 보니 한심한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이러려고 내가 소설을 읽는 건 아닌데.ㅋㅋ)
그래도 올바른 사람은 있다, 있을 것이다,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리에 어긋나는 욕심 따위는 내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을 도리에 맞게 해내는 사람들, 언제나 어디에나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름 남기지 않는 백성들로서. 그렇지 않고서야 이 속 터지는 세상을 버틸 방법이 없다. (y에서 옮김2017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