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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님의 서재
  • 중앙역
  • 김혜진
  • 11,700원 (10%650)
  • 2014-05-19
  • : 295

지금도 우리나라 어딘가에는 이런 곳이 있을 것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잠을 자는 곳.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기도 하다. 잘 사는 나라에도 있다니까. 집은 뭘까? 나를 지켜줄 공간이 없다는 암담함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누구는 노숙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겠는가마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그들을 생각하노라면 무지하게 불편하고 답답해진다. 나를 보호해 주는 내 집에 대한 고마움은 다른 감정이다.

 

이 작가의 작품으로는 세 번째. 모처럼 인내심을 갖고 연달아 읽었다. 처음 읽은 '딸에 대하여'에서 받았던 인상이 달라지지 않았다. 섬세하고 무겁고 지독하다. 이렇게 빠져 있으면 스스로는 얼마나 힘들까,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독자 입장이면서도 염려가 된다. 이런 주제의 글쓰기는 결코 즐겁지 않을 텐데, 절대로 즐거울 수가 없는 내용인데, 작가는 어떤 사명감이나 보람이 있어서 이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것일까. 

 

희망? 그런 건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못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사랑에 무슨 희망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삶,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만 가득한데 날은 새고 눈은 뜬다. 그 속에서도 만남과 헤어짐은 일어난다. 어쩌라고? 원망할 이도 애원할 이도 없는 세상에서 죽음조차 선택 사항이 되지 못하는 이 삶을 어찌 이어 나가라고?

 

마음이 어지럽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내 눈에는 보이고 잡히고, 볼 때마다 자꾸 언짢아지고,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득해지고. 가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내게 닥친 일은 아니지만 내게 닥칠 일일 수도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의 문제다. 원시 사회도 아니면서, 21세기 최첨단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하면서 엄연히 존재하는 문명 이전의 상황. 어떤 개인은 어쩌자고 이리도 불행하단 말인가.   

 

요즘에는 공항에도 노숙인들이 생긴다고 하는 것 같던데. (y에서 옮김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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