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얼마나 오락가락 하였는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왔는데 겉모습에 먼저 놀랐다. 두꺼운 표지와 600쪽이 넘는 분량, 이 책은 빌려 읽어야 할 게 아니라 사서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읽으면서 행복한 고민을 해 보자, 긴 독서가 될 것 같으면 반납하고 책을 사고 계속 읽게 되면 읽는 것이고. 그러다가 다 읽고 말았다. 좀전에 리스본을 떠나온 듯하다. 시간으로는 짧았으나 느낌으로는 오랜 여행이었던 탓에 퍽 피곤하다.
스위스 베른의 고전문헌학 교사 그레고리우스. 어느 날 어떤 충격적인 만남으로 다니던 학교를 나와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이런 식의 충동, 나도 꽤 상상해 보았는데 끝내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지. 그럴 듯한 충격적인 사건도 없었고 그만둘 용기는 아예 없었고 무엇보다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수가 없는 여건이기만 하니. 내게는 아주 좋은 핑계인 셈이기도 했고. 고전문헌학 교사라 언어 능력이 남달랐던 그레고리우스는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리스본으로 간다. 바로 배우고 바로 번역하고 바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그레고리우스는 우연히 발견한 포르투갈어로 쓰인 책의 저자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으로 간다. 소설은 프라두의 책과 이 책을 읽는 그레고리우스의 의식을 교차시켜 서술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이 소설로 세 사람의 의식을 따라가야 했다. 의사이자 작가이자 저항 운동에 참여한 프라두, 프라두의 삶의 궤적을 찾아가면서 교사였던 자신의 생을 겹쳐 읽고 있는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혼란스러우면서도 재미가 깊어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비교도 우월도 자책도 후회도 아닌 채 한숨을 쉬어가며 읽었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 수 있기는 한가.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내가 다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것도 알고, 본연의 나와 되고 싶은 내가 다르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고. 이것은 모른다는 말과 같은 게 아닐까? 하물며 내가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면서 남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일까? 내가 본 당신은 당신 자신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내 식대로 보고 이해하는 것을 당신은 얼마나 허용해 줄 수 있는가?
프라두가 쓴 책을 들고 프라두를 알고 있던 가족과 친구와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레고리우스가 알게 된 프라두는 누구일까? 이런 여정, 내가 참 좋아하는데, 이런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 찾아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과 그러고 싶은 이유를 탐색하는 시간, 몸을 움직여서 목적지까지 기어이 가는 나의 의지, 프라두를 좇는 그레고리우스를 따라다니면서 나는 계속 나를 되돌아보고 있었다. 괜찮은가, 물어 보고 확인하면서.
그레고리우스는 베른으로 돌아왔다. 나도 분명히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직도 리스본에 남겨져 있는 것만 같다. 무수한 물음들에 잡혀서. 다행인 것은 전혀 무섭지 않다는 점이다. 포르투갈어를 하나도 모르는데도. 내 언어로 나를 생각할 수 있으니.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고 다른 논리를 지녔던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까. 이게 가능할까. 자기 시간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자각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은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 P137
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나중에도 언제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깨부수기. 메멘토를 안락함과 자기기만과 꼭 필요한 변화에 대한 불안에 대항할 도구로 사용하기. 오래 꿈꾸어오던 여행을 떠나기. 이런 언어들을 배우고, 저런 책들을 읽기. 이 보석을 사고, 저 유명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기.
여기에는 더 큰 일들도 속한다. 좋아하지 않던 직업을 그만 두고, 싫어하던 환경을 떠나기.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기. - P477
죽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자신이 행한 잘못을 사과하며, 속 좁은 마음 때문에 하지 못했던,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말을 소리 내어 발음하기. 다른 사람들의 빈정댐, 잘난 척, 그 외에 타인이 누군가에 대해 지닌 변덕스러운 판단 등 지나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더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메멘토를 다르게 느끼라는 권유로 받아들이기.- P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