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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님의 서재
  •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 황현산
  • 14,400원 (10%800)
  • 2018-06-25
  • : 7,969

이 책을 좋다고 평가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왜 이 책을 쓴 사람을 존경하게 되었는가? 글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 것인가? 나는 왜 가끔 내가 낯선가?


작가는 이 책을 펴내고 난 뒤 지난 8월 8일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다시는 이분이 쓴 글을 새로 읽을 수는 없다. 한 분씩 내가 좋아하는 작가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요즘 들어 잦아지는 느낌이다-많이 슬퍼진다. 아주 많이 잃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나의 어떤 노력으로도 다시는 얻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책은 작가가 2013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쓴 글을 담고 있다. 그 사이 우리나라에 큰 일이 몇 있었다. 책을 읽어 나가면 이 시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다. 초반에는 작가가 억누르고 있는 분노와 한탄이 글을 읽고 있는 내 마음까지 떨게 만든다. 그랬다, 이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참 속 터지던 시절이었는데, 나 혹시 그 새 다 잊었나? 작가가 금방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도 말씀하셨는데...... 쉽게쉽게 놓아버리고 사는 정신을 붙잡아 일으켜 세우는 산문, 이 책 속의 글이 이런 글이다.


마냥 짜증나는 정치판 이야기이지만, 마냥 암담하기만 한 우리 사회이지만,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앞을 보면서 주변 사람을 살펴야 하는 시대다. 어디에 있는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누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글마다 알려 주고 있다. 간결하고 냉철하고 분명하게. 흐릿한 부분이 한 점도 없다. 날카로운 비판마저 아픔을 넘어 시원하다. 좋은 산문의 본보기가 얼마나 많이 실려 있는 건지, 함께 읽고 말을 나눌 이가 없어 섭섭했다. 독서 모임 교재로도 적절하겠는데. 


길지 않은 분량의 글마다 아주 멋진 말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게 글을 쓰는 실력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옮기면서 기뻤다. (y에서 옮김20181107) 

인터넷 문화를 진심으로 바로잡고 싶다면 질이 좋은 콘텐츠를 그것도 대량으로 제공하는 길밖에 다른 방책이 없다. 물론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아리송한 저 거창한 토목 공사에 비하면 사실 과자값에 불과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이 그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역시 어려운 일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 P18
함께 번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실천하는 지혜가 진정한 앎이며, 한쪽의 동포가 비극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힘이 진정한 국력이다. - P22
문제는 민주주의다.- P27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 속에서 외롭게 사는 언어라는 뜻도 된다.- P43
공공의 언어는 게으를 수 없다.- P47
식민주의의 권력자들은 삶을 통제하기 전에 먼저 삶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 P50
정장을 하고 4대 보험 직장에 출근하는 것만이 취업이 아니란 것을 아는 것이 창조의 시작이다. - P55
그러나 대학이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어쩌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좁은 울타리 안에서나마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의 모델을 만들고 실천하는 일이다.- P67
사전의 이념은 민주주의다. - P85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P97
학문에서 제 나라 말을 소외시킨다는 것은 제 삶과 역사를 소외시키는 것과 같다.- P101
무정함은 무정함을 반성하지 않는다. ...... 난폭함은 난폭함을 반성하지 않는다.- P108
인성 교육이란 폭넓게 맗말하면 인문학 교육이고,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르는 공부다. 사람은 산업 역군이기 전에 사람이고 국가의 간성이기 전에 사람이다.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이념에 맞게 사람을 교양하려는 시도는 벌써 사람을 배반한다. 사람이 국가나 제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제도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명백한 진실이고, 그래서 잊어버리기 쉬운 진실이다. 학생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국정교과서로 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부종리의 마음속에 있다면, 그는 자신의 인성부터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이다.(2015.1.31.)- P112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에 우리를 다 바쳐야 한다. 그때 넘어진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 P127
지식과 의식의 깊이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낭비에 해당하며, 그 낭비에 의해서만 지식은 인간을 발전시킨다. 외국어로는 아는 것만 말할 수 있지만 모국어로는 알지 못하는 것도 말한다. - P144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언어를 지키고 가꾼다는 것은 그들만을 위한 의무가 아니라 인류를 위한 의무가 된다. - P149
지옥은 진정한 토론이 없기에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P158
식민지의 가장 큰 불행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들이 제 운명을 제 뜻대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160
한 인간의 고뇌가 세상의 고통이며, 세상의 불행이 한 인간의 슬픔이다.- P169
모든 인간은 자기 안에 타자를 품고 산다. 자기이면서 자기인 줄 모르는 자기, 자기라고 인정하기 싫은 자기가 자기 안에 있다는 말이다.- P173
정신과 육체의 식민화 시도도, 등단·비등단을 칼같이 가르는 등단 제도도 모두 남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열등감 문화의 소산이다. - P191
진보주의를 삶의 방식으로만 말한다면 불행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기다.- P197
역사의 발전은 늘 희생자의 서사로부터 시작한다.- P219
간절하게 바라보는 현실은 현실보다 조금 덜 현실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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