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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님의 서재
  • 왕과 서커스
  • 요네자와 호노부
  • 15,750원 (10%870)
  • 2016-06-27
  • : 2,821

글을 쓴다는 것. 이것에 대해 여러 사람의 글을 읽은 것 같다. 왜 쓰는지, 각자의 가치관과 사명에 따라 이유를 밝혀 놓은 글들이었다. 아, 이래서 쓰는구나, 어떤 내용들에는 공감했고, 어떤 내용들에는 의아하게 여겼다. 그러면서 나도 내가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왜 쓰려고 하는 걸까, 지금 나는 이 글을 왜 쓰고 있는 걸까, 왜 이 글을 알리고 있는 것일까. 


이 소설은 이런 물음에 대해 궁리하게 한다.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화자는 잡지사 기자이고, 그녀는 기사를 쓰려고 취재를 하면서 이 물음과 만난다. 언뜻 가벼워 보이는 분위기이지만 전혀 가볍지 않았다. 기자가 기사를 쓰고 세상에 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명감? 돈? 자기 만족? 표현의 본능? 때로는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을 받게 되는데? 써야 할 것을 써서 알리는 것만큼이나 쓰지 말아야 할 것 혹은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을 알리지 않는 것도 기자의 사명 중 하나라는데? 


읽는 동안에는 쓴다는 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는데, 막상 정리를 해 보려고 하니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다. 소설의 화자만큼이나 내 마음도 복잡하게 움직인다. 이기심이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하고 싶고, 그런데 다른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설득력이 모자라고. 그러니 자꾸만 변명같은 것을 구하게 된다. 


나는 왜 쓰는가. 내가 쓴 글로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에 정녕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자부심을 갖고 싶어서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말 내가 나를 돌아보기 위한 차원에서 쓰고 있는 것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가. 꽁무니를 빼고 싶은 마음이다. 나서고 싶은 것은 무슨 마음이고 물러서고 싶은 것은 무슨 마음인지, 내가 생각해도 참 쑥스러운 이중성이다. 


이제까지 읽은 이 작가의 소설 분위기와는 좀 달라서 새로웠다. 세밀한 전개 방식은 유사한데 배경이 네팔이어서 그런가? 이 소설 덕분에 네팔의 카트만두를 새로운 기분으로 다녀온 느낌이 들어 괜찮았다. (y에서 옮김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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