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이라는 생각을 거듭 하면서 읽는다. 내가 좋아하는 좋은 글은 나를 일깨우는 글이다. 지금 뭐하고 있느냐고, 바로 하고 있느냐고, 생각이든 행동이든 나를 자꾸 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글을 읽고 있으면 홀로 자랑스러웠다가 홀로 부끄러웠다가 홀로 뿌듯했다가 홀로 민망해지곤 한다. 아무도 나를 보고 지적하는 일이 없어도 나는 스스로 의식하고 스스로 웃는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현대 역사에서 아픈 기준으로 계속 살아날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확인했지만 언급하지 않는 책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우리가 얼마나 반성하고 얼마나 행동을 바꿔 나가야 할지, 마음은 급한데 아득하기만 하다. 글만 읽어도 여전히 이렇게 먹먹한데, 그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지.
시를 작가의 산문으로 읽고 작가의 산문을 새로운 시로 읽는 이 기분, 이런 글읽기는 여건만 된다면 계속 하고 싶다. 책도 계속 붙잡고 있고 싶고, 글읽는 시간도 더 찾아내고 싶다.(작가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김현 교수의 책이 자꾸 떠오르면서 새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y에서 옮김20160311)
작가가 된다는 것은 변호사가 된다는 것과 다르고 의사가 된다는 것과 다르다. 공부를 많이 해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글을 잘 써야 하지만 글을 잘 쓴다고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문학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야 하지만 지식의 풍부함이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훈련된 것일 수도 있는 어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고, 그 능력이 발휘될 계기가 필요하다. 하기 쉬운 말로 흔히 미학적 재능이라고 부르는 이 능력은 둔중한 것에서 날카로운 것을 발견하고 단단한 것에서 무른 것을 발견하며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의 질서를 바꾸는 힘이다.- P37
사람살이는 무한하게 넘실거리며 어제 중요했던 것들의 질서를 오늘 바꾼다. 저 먼 물결의 끝에서 하찮은 것들이 하찮은 신음을 내지른다. 한 세상의 도리를 강구한다는 근엄한 선비 앞에서 갱피 훑는 여자는 참으로 하찮은 존재다. 열녀의 절개는 기생의 딸 춘향이 넘볼 철학이 아니다. 그러나 문학이 저 하찮은 것들의 말이 아니라면 어디서 숭고한 말을 찾을 것인가.- P60
<일대종사>에서는 말한다. 무술에는 자기를 보는, 천지를 보는, 중생을 보는 세 단계가 있다고. 저를 본다는 것은 저 자신을 안다는 것이고, 천지를 본다는 것은 저 자신이 미약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고, 중생을 본다는 것은 인간들의 열정을 생각한다는 것이겠다. 한 인간의 열정은 시간 속에 재가 되어도, 저 열정들은 천지에 가득하다.- P69
실천은 지금 이 자리의 실천일 때만 실천이다. 진정한 삶이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 모양으로 놓아둘 수 없다는 말이다.- P98
예술의 희생보다 세상의 희생이 먼저 있다. 예술이 세상을 낯선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갑자기 낯선 것이 되어 버린 사람들을 위해 예술이 있다. 예술에 희생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희생 뒤에 겨우 예술이 있다. 믿음과 사람이 그렇게 어렵고, 믿음과 사랑이 그렇게 절박하다.- P130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최승자)- P193
시 쓰기는 끊임없이 희망하는 방식의 글쓰기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가 말하려는 희망은 달성되기 위한 희망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로 남기 위한 희망이다. 희망이 거기 있으니 희망하는 대상이 또한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희망이다.
꽃을 희망한다는 것은 꽃을 거기 피게 한 어떤 아름다운 명령에 대한 희망이며, 맑은 물을 희망한다는 것은 물을 그렇게 맑게 한 어떤 순결한 명령에 대한 희망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희망을 단단히 간직하는 일이다.- P262
산문은 이 세계를 쓸고 닦고 수선한다. 그렇게 이 세계를 모시고 저 세계로 간다. 그것은 시의 방법이 아니다. 시가 보기에 쓸고 닦아야 할 삶이 이 세상에는 없다. 시는 이를 갈고 이 세계를 깨뜨려 저 세계를 본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무정하다는 것이다.- P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