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추리소설에 적절한 가상공간을 마련하는 작가. 라이츠빌이다. 책 앞에 도시의 중심지를 지도로 보여 주고 있어서 머릿속 그림을 그려 나가기에 퍽 편리하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이렇게 도시 하나가 세워지는 상상 속 세계다. 이왕이면 바람직한 모습의 도시나 마을이었으면 좋으련만. 이래서는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는 않겠지?
엘러리 퀸이 소설을 쓰기 위해 라이츠빌로 온다. 집을 빌리고 이 집에서 사건이 하나둘 일어난다. 작은 마을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대충 다 알고 있는 분위기에서,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에 더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의 본성. 얄궂다는 느낌이다.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이 공통점은 사라지지 않고 발현되는 것만 같다. 쑥덕쑥덕, 남 잘 되는 것은 못 보겠고, 못되는 일에는 참견하고, 소외시키고, 소외당하면서 괴로워하고, 그러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반성하고. 용서할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없고. 재앙의 집이니 재앙의 거리니 멋대로 이름이나 지어 부르며 또다른 죄를 짓고.
엘러리 퀸의 시선과 행동을 따라 라이츠빌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냥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도 했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물론 요즘처럼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더러 교류도 좀 하고 이웃 사정도 좀 알고 있다고 본다면 말이지.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되기까지는 어떤 동기가 얼마나 차올라야 실행이 될까. 하도 자극적인 드라마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살인이라는 소재가 이제는 별로 낯설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만큼 쉬울 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일 텐데. 죽고 죽이는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는 독자나 시청자의 본성은 어떤 것일까.
라이츠빌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이 책을 포함해서 5권이라고 한다. 짐과 노라의 슬픈 사랑이 애달팠는데 다음 비극은 어떤 집 누구에게 일어날 것인지. (y에서 옮김2024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