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바람개비님의 서재
  • 절연
  • 정세랑 외
  • 15,300원 (10%850)
  • 2022-12-05
  • : 1,083

정세랑 작가가 기획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되었다는 소설집이다. 정세랑 작가의 글이 한 편 있고 일본을 포함하여 싱가포르, 중국, 태국, 홍콩, 티베트, 베트남, 대만 작가의 글 8편, 모두 9편의 소설과 대담이 실려 있다. 한중일이 아닌 아시아 국가의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낸 책인데 퍽 만족스럽다. 기획한 정세랑 작가가 더 믿음직스러워진다. 공통 소재가 책 제목인 '절연'이다.


이런 기획 작품집, 독자로서는 고맙기 그지없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만나기 쉽지 않은 작품들일 테니. 번역자가 한 사람밖에 나오지 않아 궁금했는데 정세랑 작가의 글을 빼고 일본에서 취합하여 일본어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글로 번역했다고 한다. 약간 아쉬운 기분이 드는 지점이기도 하고. 독자의 문제일까, 번역가의 문제일까, 출판사의 문제일까, 자본의 문제일까... 괜히 아무나 붙잡고 트집을 잡고 싶어진다. 


일본-무라타 사야카의 글을 몇 년 전에 읽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때도 서늘했다는 느낌이 기억났는데 이번 글 '무'에서도 비슷했다.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과 같아 보여서 당황스러워지는 소재와 전개.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고 대충 얼버무릴 수가 없다,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정신이 반짝 든다. 


싱가포르-알피안 사아트의 '아내'는 서글펐다. 그 나라의, 그 민족의, 그 종교의, 그 사람들의 풍습이고 전통이고 문화라고 해도, 내가 인정하는 바와 느끼는 바는 다르니까. 


중국-하오징팡의 '긍정 벽돌'은 좀 무서웠다. 중국 SF소설을 몇 편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낯익은 분위기와 낯선 분위기가 섞이면서 자아내는 생소한 느낌에 어리둥절해졌던 기분도 생각났다. 가까운 듯 먼 중국의 문화로부터 내 쪽에서 물러나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태국-위왓 럿위왓웡사의 '불사르다'는 다른 글에 비해 다가서기 어려웠다. 시점이 바뀌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국과 태국 사람과 태국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너무 없어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홍콩-홍라이추의 '비밀경찰'에서는 낯익은 오싹함이 떠올랐다. 때로 비슷한 경험이 절망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있다. 그게 간접 경험이라고 해도. 여기에서 이렇게나 끔찍한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그런 끔찍한 경우가 있다고? 사람이 끔찍한 것일까, 사람이 만든 제도가 끔찍한 것일까? 제도를 끔찍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끔찍한 것이겠지? 소설로 얻는 간접 경험은 편하지만 지독하게 남는다. 


티베트-라샴자의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 있다'. 이 작품도 내 서글픔의 영역으로 담는다. 티베트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야 하는 과정이 담겨 있는 글이다. 


베트남-응우옌 응옥 뚜의 '도피'는 우리 각자의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내 어머니는 나에게 누구이며, 내 자식에게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이어져서 끊어지지 못하는가.  


대만-롄밍웨이의 '셰리스 아주머니의 애프터눈 티'도 내 서글픔의 영역으로 보낸다. 대만은 어떤 곳인가, 중국과는 어떤 관계에 놓여 있나, 티베트나 대만이나 중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룬 곳이 아니라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데. 그 영향이 평범한 사람의 삶에 끼치는 바가 때로 두려워서 주저앉게 된다. 읽는 일만으로도 힘겹다.


우리나라-정세랑의 '절연'. 그래, 인연을 끊어야지, 이런 사람들과는. 한때는 친했으나, 한때는 믿고 의지했으나, 한때는 존경하고 따랐으나, 상대는 결코 원하지 않지만 내 쪽에서 편집해야 하는 지점이 오는 때가 생긴다. 오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오는 것 또한 인연의 한 형태일 것이고 절연이 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여행에서 얻는 것보다 아주 많은 감흥을 얻은 기분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