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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님의 서재
  • 인생은 지나간다
  • 구효서
  • 6,750원 (10%370)
  • 2000-11-15
  • : 600

추억을 부르는 나이는 좀 쓸쓸한 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이 생기는 나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고 부질없는 후회나 회한을 갖는 나이, 그때 내가 그랬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쓸데없는 가정을 해 보는 나이. 그래서 나는 사실 추억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에는 그러한 추억과 관련된 사물들이 많이도 담겨 있다.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사람들, 그런데 아직 쉰은 되지 못한 사람들, 그 시절이라면 누구나 대충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 다들 그렇게 힘들고 다들 그렇게 열심이었던 나날들. 그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또하나의 생명체로 살았던 낯익고 정겨운 사물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고유한 옛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매개체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만의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 책에 이미 나와 있는 것 말고 뭐가 없을까. 내 어릴 적을 돌이켜 줄 그 무엇. 생각해 보니 나는 이 작가보다는 조금 늦게 세상을 살아왔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집에 처음 텔레비전이 놓였던 적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고, 중고등학교 때는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을 듣노라고 저녁 8시 40분만 되면 라디오에 귀를 박고 살았다. 그 때 그토록 감명깊었던 사랑 이야기들은 지금도 내 마음 속에 그림자로 남아 가끔 나를 한숨짓게 만들기도 한다. 고교야구는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박노준과 김건우가 나오는 선린상고와 성준이 있는 경북고와의 황금사자기 결승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의 스포츠 중계석을 하는 늦은 밤 시간에는 그날의 고교야구 하일라이트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아참, 대학가요제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대학가요제 실황을 우리는 공테이프에 녹음을 했었다. 그리고는 다음해 대학가요제를 다시 할 때까지 그 테이프를 들으며 노래들을 익혔다. '꿈의 대화'나 '바윗돌' 같은 무수한 명곡들....

나는 기껏 책을 한권 읽었을 뿐인데 나의 상념은 이대로 끝이 없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추억은 다른 사람의 것대로 아름다우리라. 나는 또 나대로 나의 추억에 젖는다. 이미 잊었던 것, 몹시도 잊고 싶었던 것, 그러나 영 잊혀지지 않는 것,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잠시나마 푹 잠겨 있을 수 있어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읽고 난 한참 후까지도. (y에서 옮김20010102)

심지어 사랑에 빠진 사람 중에는 사랑하는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상대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은 거울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 거울에 비친 자신마저 자신이 아닐 때 우리가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아니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유래와 종족을 알 수 없는 숱한 왕자나 숱한 공주만을 보고 사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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