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간절하게 파묻히도록 하다니. 겨울은 겨울답게, 여름은 여름답게, 봄은 봄답게, 가을은 가을답게, 더할 수 없이 절절하게 그 계절을 느끼고 살게 한다. 지독하다. 지독해서 좋을 수도 안 좋을 수도 있겠는데, 처음에는 지긋지긋했다가 나는 점점 좋아졌다. 계절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확실한 얼굴을 보여야지 싶으면서.
이 작가를 좋아하므로, 좋아해서 갖는 선입견도 있다. 이 소설집은 이 선입견이 소설을 읽는 나를 좋은 쪽으로 더 자극했다. 내가 모르고 있던 작가였다면 이만큼 몰입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이 작가니까, 이 작가가 쓴 글이니까, 이 작가가 이렇게 썼다면 이렇게 쓴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내가 그 이유를 금방 알아내기 힘들어도 분명히 이렇게 쓴 어떤 의도가 있을 테니까, 그 이유를 찾아내는 일은 내가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일 테니까, 그러면서 읽었다. 그리고 역시 그러하였다.
이야기나 사건이나 인물의 감정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상황이, 인물이 처한 상황이, 그 상황을 바라보는 인물의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그 계절에 그 인물의 곁에 바짝 다가서 있는 느낌이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그런데 그런 눈으로 같이 바라보는 게 마냥 상쾌하지가 않다. 온몸이 자잘하게 떨리고 불만스럽고 될대로 되라는 기분이 제멋대로 든다. 작가가 의도했던 것일까. 세상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도 않는데, 한 번 더, 아니 몇 번씩이나 되새겨주는 것처럼, 거봐, 지치지? 힘들지? 포기하고 싶지? 그래도 포기가 안 되지?, 약올리는 것처럼.
다른 책에 비해 나로서는 오래 갖고 다니면서 읽은 책이다. 후루룩 넘겨버리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 더 읽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17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