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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남궁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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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 2024-05-01
: 3,137
답답할 때 답답한 소설을 읽으면 답답함이 좀 가실까 더할까? 소설은 갈등을 기본 요소로 삼고 있는 글의 장르라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기대고 싶어진다. 갈등 없는, 답답함이 없는, 투명하고 환하고 벅찬 세상을.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일. 마땅히 이렇게 되어야 한다. 문제는 공평하지 못하다는 현실에 있다. 누군가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먹여 살리는 일이 어렵고 힘들기만 하고 누군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먹고 살 게 주어져 있고. 소설은 힘든 처지에 있는 인물들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나 보다. 그렇겠지, 먹고 살 게 절로 주어지는 인생에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책 제목은 실려 있는 8편의 소설 중 하나와 같다. 나는 8편의 소설이 이 제목 아래에 놓이는 줄 알고 읽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편집 쪽의 기획에 따라 만들어진 책이라 주제는 통한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특히나 사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한 처지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알아야 하지만, 알아야 한다는 게 또 답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라 소설 읽기는 고달프기 짝이 없다.
최근 답답하고 힘든 상황을 글로 묘사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님을 경험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싫어서 그저 잊어버리고만 싶은데 그걸 되살려 표현을 해야 한다니. 글이든 그림이든 현실을 그려 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작가의 숙명이라고 하더니,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 모양이다. 남의 이야기든 지어내는 이야기든 암울한 현실을 그려 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내가 읽지 못하는 점은 다른 문제이고.
우리의 내일은 괜찮은 걸까? 어제 염려하고 바꾸고자 했던 바는 바람대로 될까?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일 테지. (y에서 옮김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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