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이끌려 뽑은 시집이다. 이 놀이터는 어떤 놀이를 하게 해 줄 것인가, 궁금증과 기대감을 품고 읽었다. 읽다가는 반갑게도 군데군데 머물면서 놀았다. 어떤 놀이는 이유도 모른 채 빠져들게 만들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기분으로 다 헤아리지는 못하겠구나 싶으면서도 옮겨 보았다. 문장 하나하나의 결이 읽는 순간의 나를 끌어당겼다. 이만하면 족하지 않느냐고, 이만해도 충분하다고.
그렇다고 해도 한 권의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의 전문을 얻지 못하면 퍽 섭섭하다. 시인과의 만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느낌이 드는 탓이다. 문장들 여럿보다는 온전한 한 편의 시가 더 나을 때가 많은데. 시인이 펼쳐 놓은 길들이 군데군데 막혀 있는 듯, 내 쪽에서 열기만 하면 되도록 숱한 잠금 장치가 내 앞에 보이는데도 열지를 못한다. 누구를 탓하랴.
거북한 느낌으로 읽게 되는 시어들이 많이 보인다. 강하고 거친 단어들과 이 단어들이 빚는 험한 세상으로는 다가설 마음이 안 난다. 나는 여전히 시 속에서 보호받고 싶은 성향이 강한 상태다. 그 어디에도 부딪히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들 정도로. 옮겨 놓은 구절을 다시 읽어 보니 이 시집의 가장 여린 대목들만 데려온 것 같다. 낯부끄럽게도. (y에서 옮김20210318)
너도 잠수부처럼 배를 버리고 물결치는 물의 어둠 안으로 들어간다.- P9
간혹 밤의 라디오가 구워주는 음악 편지가 빵 속보다 촉촉하다- P10
흙 아래 작은 꽃 피우는 젖은 눈이 있다- P13
나는 마음의 육체성을 따라가보려 한다.
느린우체통에 맡긴 엽서 걸음일 테다.- P15
바람은 어디서 바람과 만나 기다리는 바람을 낳나- P24
일몰이 비껴가는 창에서 하루 중 풍경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순간을 조작한다- P38
떠날 수 있는 이의 행장은 가벼우리.
무거운 것은
먼지와 고요, 햇빛.
그리고 아마도
언젠가 꾼 적 있는 꿈을 다시 꾸는 일. - P54
골목은 골목에서
간신히 놀고 있네
소실점을 얼굴에 둔 그림처럼 눈동자 안으로
흔들리며 걸어가는 골목들 - P68
얼음의 날씨를 열며 닫으며
고요의 회복기를 고요와 함께 견딜 때
날개가 품은 바람길을 빌려주던 창문, 해변들- P77
거리에는 언제나 기억을 가리기 좋을 만큼 어둠이 있다- P94
당신은 당신으로부터 걸어서 오오
오늘은 오늘로부터 걸어서 오오- 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