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숨에 값이 있을까? 어떤 사람은 비싸고 어떤 사람은 값싸고 어떤 사람은 귀해서 함부로 죽이면 안 되고 어떤 사람은 죽일 만하니 죽여도 괜찮고...... 그런 게 있을까? 있다면 누가 재단하는 것이지? 신도 조물주도 아닌 같은 입장의 사람이라면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소설에서는 사건들이 바깥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푸아로 경감은 중간중간 알아챈다고 하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런 눈치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얻은 결말, 좀 황당하고 또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그랬다고? 죽일 만한 사람이라 죽였고 어쩌다 운이 나빠 죽어야 했다고? 살인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변명도 핑계도 아닌 당당한 변호였다. 자신만큼은 세상에 특히 영국에 너무도 이로운 사람이라는, 그래서 그래도 된다고 여긴다는 그의 생각 자체가 끔찍해 보였다. 요즘에도 이런 뻔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 것인지.
100년 전의 배경이라 아득한 옛날 일일 것 같아도 사람의 본성만큼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변하지도 않고 변할 수도 없는 모양이다. 이기심이라든가 질투와 시기라든가,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이라든가. 재미있게 읽고는 매번 절망한다.
이 작가의 소설 시리즈 중 안 읽은 것으로 한 권(뮤스가의 살인)이 남아 있다. 나란히 세워 놓은 책등의 제목들을 보고 있으면 마냥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