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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님의 서재
  • 케이크와 맥주
  • 서머싯 몸
  • 11,700원 (10%650)
  • 2021-09-10
  • : 6,227
그저 재미있게 읽었다. 이 작가가 풀어나가는 글솜씨는 익히 알고 있던 바이고, 어느 한 구절 걸리는 대목 없이 술술, 이걸 이렇게 평온하게 읽어도 되나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재미를 따라갔다. 화자인 어셴든과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차례로 접하면서 책을 읽기 전에 언뜻 본 소개글의 '풍자'라는 특성이 글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나 챙겨 보려고 했는데 읽는 동안에는 내내 실패했다. 내가 소설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던 탓이다. 끝날 무렵에서야 간신히 발견했다고 해야 할지.

그때도 그랬단 말인가. 그곳에서도 그랬단 말인가. 이건 도대체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지 않는가. 작가도 아니지만, 우리의 문단이라는 곳이 어떤지 아는 바도 없지만, 꼭 문단의 모습이라고 할 수만도 없을 것 같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풍경이라는 생각에 한탄보다 신기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없다고 해도 계급과 신분은 있고, 아니라고 해도 후원자의 힘이 중요하고, 남자보다는 여자가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으로 더 비난을 받는 상황이라는 것. 화자인 어셴든이 로지에 대해 그토록 강하게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대목에서야 비로소 '아, 풍자!' 했으니까.

자신이 속한 직업의 속사정을 낱낱이 드러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고 여겨왔다. 그게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아니, 소설이라서 더더욱. 이 작가는 이 일도 참 잘 해낸다. 실제 작가가 실존 인물을 작품 속 인물의 모델로 삼았다는 게 당시 큰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당사자의 호소에도 능청스럽게 대응한 걸 보면 여간 대단한 사람이 아닌 듯하고. 솔직하다는 장점을 넘어 고발 수준의 용기로도 생각되는데 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잘난 척 하는 남자 작가들 말고, 화자가 좋아한 로지라는 여성 인물이 퍽 와 닿는다. 남들이 다 욕을 해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 그래서 만나는 이를 행복하게 해 줌으로써 스스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 누가 나무랄 수 있다는 말인지. 어쩌면 부러워서-자신이 이 여자의 유일한 상대가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이건 남자 쪽), 자신도 이 여자처럼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이건 여자 쪽)-부러움을 느끼는 자신이 민망해서 도리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던 건 아닌지. 나 역시 이런 마음이 들었던 듯하고.

소설 참 무서운 글이다.

작품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로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등장한다. 올리비아의 집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흥청거리는 앤드루 경과 토비 경에게 집사 말볼리오가 소란을 멈추라고 다그치자, 토비 경이 다음과 같이 응수하는 장면에서다. “자네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케이크와 맥주가 더는 안 된단 말인가?” - [출판사 리뷰]에서 (y에서 옮김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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