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꿈
앨런라이트먼
권루시안_옮김
다산책방
시간
스물 여섯, 푸른 불꽃같은 청년이었던 아인슈타인의 1905년은 그의 공간과 시간의 복합적인 반응이 폭발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스위스 베른의 연방 특허청에서 서기로 일하면서도 그의 과학적 사고, 관찰, 탐구의 공간이 확장되어 지는 시기였습니다.
그의 시간에서 쓰여진 여러 논문-광전효과 논문, 브라운운동 논문, 특수 상대성 이론 논문, 질량-에너지 등가성 논문-들은 공간, 질량, 시간, 에너지에 대한 물리학의 역사에 가장 커다란 이정표가 되어진 해였습니다. 1905년 아인슈타인에게 기적의 해(Annus Mirabilis)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꿈, 이 소설같지 않은 앨런 라이트먼의 소설은 1905년의 시간들이 가진 의미들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시간, 공간, 질량, 에너지가 가진 그 의미들이 빛나는 서른개의 조각들을 우리는 맞춰볼 수 있습니다.
1905년 5월 10일의 문장에서 "여러모로 이곳은 전체가 한 조각으로 이루어진 온전한 마을이다"p.64
한 조각의 마을, 한 조각의 시간, 공간, 질량, 에너지.
저자는 이 조각의 맞춤에 앞서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삶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여 보기를, 인간이 만들어낸 이 세계의 속도에서 진정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이 중요하고,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물 여섯의 아인슈타인에게 1905년이 가진 의미처럼, 저마다 시간에, 공간에, 질량과 에너지의 조각들에서 의미를 가진 이음과 맞춤이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시간에 대해 꿈을 많이 꾸었다."p.19
시간의 꿈들에 대한 서른편의 글은 저마다 다른 시간의 질감과 명암으로 표현되어 지고 있습니다. 시간은 거칠어진 표면의 촉감처럼 기억되기도 하고, 어둠과 밝음의 밝기 속에 부딪히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기도 합니다. 공간에서의 시간은 공간의 같음에서 정주하지 않고 시간의 다름이라는 영역에서 유랑하게 하기도 합니다.
"각각의 방향마다 그 속에 사는 사람은 같아도 운명은 서로 다르다. 시간 속에는 세계가 무수히 많다."p.32
시간에 대한 서로 다름의 이름들에서 시간은 공간의 세계 속에 있지만, 공간의 세계 밖에도 다른 시간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나에게 시간은 바람입니다. 내 앞으로 밀려온 바람이 내 뒤로 쓸려가고, 다시 뒤돌아서 내 앞으로 지나가면 지난 시간의 기억들의 잔향이 붙잡지 못한 수많은 꿈들의 시간을 기억하게 합니다. 책 속에서 이 의미를 함축해 놓은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두 시간은 모두 참이지만, 두 참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p.36
"시간과 사건의 경과가 일치하지 않다면 시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시간과 사건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사람들뿐이다."p.52
시간에 대한 이 조각들은 저마다의 색깔이 입혀있습니다.
그것은 이 조각난 시간을 꿈꾼 아인슈타인의 감각과 이성의 색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꿈은 단색일 수 있고, 또 꿈은 흑백일 수 있지만, 아인슈타인의 꿈은 색깔이 있는 시간의 조각들이 않았을까?
기억이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기억이라는 것은 공간과 시간의 조각이 맞물린 이음이일 것입니다. 그 이음은 글이며, 기록이라는 것으로, 지금 이 기록조차도 기억 위에 새로운 기억을 기록하는 행위입니다. 기록하는 이 기억으로 인해 언젠가 나는 '책을 읽고 기록하는 것은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고....
"기억이 없는 세계는 현재의 세계다. 과거는 책 속에서만, 기록 속에서만 존재한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제각기 자신의 일기책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거기에는 자기 인생의 역사가 가득 적혀 있다."p.83
시간은 속도입니다. 시와 분과 초로 이루어진 하나의 도구에서도 분명 시간은 보여지는 것을 정지이지만, 그 안에서 시와 분, 그리고 초는 저마다의 속도로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에, 서로 다름의 속도로 살아가지만, 하나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속도가 빠른 세상을 지금 살아갑니다. 어쩌면 더 빠른 시간을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나의 시와 분, 초는 나라는 존재의 속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왜 그렇게 속도에 집착할까? 여기 이 세계에서는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빠른 속도로 움직여 시간을 벌고자 한다."p.90
하루만 살아가는 세계가 있고, 영원히 살아야 하는 세계가 있기도 하지만, 이 서로 다른 두 시간의 이야기에서도 시간은 같다는 것을 읽습니다. 시간의 같음은 그들에게 다름이 아닌 같음으로 정의되어지게 됩니다. 시간은 무엇으로 정의되어질까?
아인슈타인의 꿈은 시간의 같음에서 다름의 이음으로 서로를 붙여보게 됩니다. 나는 이제 이 조각난 시간들의 공간에 들어가는 꿈을 꿉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 끼워진 이 조각의 창들을 통해서 투영되어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보임이며, 시간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의 맞춤과 이음입니다. 그 조각의 이음들 공간 안에서 나의 세계는 정주와 유랑의 시간들이 부딪히고 부딪혀 살아가는 시간의 울림이기기를 바라여 보는 마음을 읽기와 쓰기를 맞혀봅니다.
"여기 이 세계에서 시간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차원이다."p.124
"...시계가 처음으로 발명됐다....중략...이 인간의 발명품은 시간의 흐름을 양으로 따지고, 욕망과 욕망 사이에 잣대와 각도계를 놓고, 삶의 순간을 정확하게 재는 것이다."p.140
다산북스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이 짧은 서른편의 글들을 읽고 저마다의 시간의 조각들을 맞춰보는 시간되셨으면 하며, 추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