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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님의 서재
소설은 이야기인가?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소설에는 이야기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뭔가가 숨어 있다. 은희경씨의 이 책에 대해 혹평들이 많다. 어째서 그런 혹평을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우선, 이 소설에는 '대중적인 재미'가 없다. 능청스러운 유머도 많지 않고, 배꼽을 잡게 하는 개그도 없다. 기왕에 출간된 은희경씨의 작품과 비교하자면 놀라울 정도로 '대중적인 재미'가 없다. 하지만, 소설이 꼭 웃겨야 하고, 재미있어야 하는가. 이 소설에는 깊이가 있다.
'비밀과 거짓말'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야기나 주제가 아니라 '화법'이다. 어떤 이야기인가보다 중요한 것이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가, 라고 생각한다. 소설이란 이야기를 늘어놓는 장르가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를 배치하느냐의 장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점에서 '비밀과 거짓말'은 감탄스럽다. 지금까지 은희경씨의 모든 역량을 총집결한 듯한, 능청스러우면서도 조직적인 구성과 인칭과 상황을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화법을 읽고 있노라면 '아, 이래서 은희경이구나' 싶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 거야? 라는 조급한 마음보다는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듯 천천히 이야기를 음미하면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사실과 허구와 상상이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군데군데 배치해놓은 K읍의 역사에 대한 부분은 약간 길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분명 실타래를 다 풀고나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재미'에 근거한 리뷰가 너무 많아 새로운 각도로 '비밀과 거짓말'을 얘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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