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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님의 서재
  • 현기증
  • 프랑크 틸리에
  • 11,700원 (10%650)
  • 2014-07-02
  • : 107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동분서주하고 복잡한 수사를 풀어나가데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미국이나 일본 스릴러와는 영 다른 느낌이었다.

빙하 구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세 명만 등장하는데, 세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지켜보다보면서 진짜 감금된 것처럼 숨이 막혔다. 어떤 리뷰에서도 답답하다는 평이 있었는데, 그 답답함이야 말로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싶다.


조인공 조나탕은 자신을 감금한 공간이 숨통을 죄여오자 일생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어쩔 수 없이 고백한다. 비밀이 밝혀지기까지 조나탕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교대로 그려지기 때문에 딱 한 공간(구렁)에만 머물러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구렁 속에 있다가도 갑자기 젊은 날의 조나탕이 타고 오르는 히말라야 산의 위태로운 암벽 풍경이 펼쳐지고, 또 어느 순간은 신혼부부의 화기애애한 공간이 나오기 때문이다.

 
비밀이 밝혀지기까지 수수께끼의 해답이 점차적으로 드러나는데, 가장 중요한 단서인 지상으로 탈출하는 열쇠는 정말 상상을 뒤엎는 반전이었다. 과연 나였다면 그런 방식으로 탈출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밖으로 나와 해방되고 나서도 이제 숨통이 트이는가 했는데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고백한 것들이 마지막 부분에서 또 다시 과연 정말 진실이었을까 의문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짜 무엇이 진실이란 말이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앞부분을 다시 읽었다. 그 점에서 이 소설 제목이 왜 현기증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고백해야 할 진실을 감추는 동안에는 우리는 동굴에 갇히지 않아도 동굴에 갇힌 듯 가슴이 답답하다. 비밀과 진실을 고백하는 순간에 우리는 마침내 ‘스스로에 대한 부적절감’을 극복하게 되는 것 같다. 가면을 쓴 채로 마주하는 상대에게 억지 제스춰를 취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내 얼굴에 답답하게 덮여 있는 가짜 피부를 벗겨내는 용기를 부추기는 소설이 아닐까. 용기를 내기까지 어딘지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용기를 낸 후에 얻게 될 자유를 위해 치르게 될 비용이 아닐까. 불편하면서도 숨을 죄는 한편, 마지막에 가서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문장이 속도감 있게 읽히면서도 각 장의 서두에 나오는 주인공의 개인기록, 독서 일기를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여유도 가질 수 있다.


또 프랑수아즈를 피앙세로 불렀다가 나중에 아내로도 지칭한 번역은 프랑수아즈와 막스(조나탕 이전 남자)가 동거하는 관계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해외 가십 기사에서 보면 프랑스 유명인들 중에서도 아이도 낳고 수십 년을 같이 살면서도 결혼하지 않아 법적 부부가 아닌 사람들이 많던데, 프랑수아즈도 막스와 법적 혼인은 안 했다고 해도 그의 단순 동거녀는 아니었으니까. 함께 아이를 갖기로 계획하는 등등.

어쨌든 약혼녀이면서도 아내와 동등한 지위로 그 남자와 살았기 때문에 그런 해석도 가능한 것 같은데, 요즘 외국에서의 결혼의 의미와 우리나라에서의 결혼의 의미는 많이 다른 걸 느끼게 되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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