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의 기원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경험상,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왜 지식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때로는 엉뚱하게까지 느껴지는 말을 하는지, 그리고 왜 이들이 그렇게까지 설득되지 않는지 늘 궁금했다.그런데 류근일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10년 전에도 이른바 뉴라이트로 불리던 인사들 중 일부는 박근혜 탄핵이 정당했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 지점을 보며 나는 오히려 이런 유형이 더 위험하다고 느꼈다.노골적인 이념은 드러나 있기 때문에 경계할 수 있다.그러나 스스로를 합리적이라고 믿는 지식인은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그들은 극단과 거리를 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하나의 방향 안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된다.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말하는 합리성은 완전히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일정한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 국가의 역할에 대한 기대, 권력에 대한 기본적 불신과 같은 전제 위에서 내는 결론은 자연스럽게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하게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합리적 중도”, 혹은 “합리적 좌파”라고 규정한다. 내 주변의 지식인들에게서 ‘합리적’이라는 표현을 유난히 자주 들었는데, 그때는 왜 하나같이 저런 단어를 반복해서 쓰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었다. 특정한 입장이, 마치 보편적인 기준인 것처럼 작동하는 흐름 말이다.나는 이것이 지금까지도 지식인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극단이 아닌 합리적인 위치에 두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지식인 집단에서는 그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 합리성이 특정한 방향과 흐름 안에서만 작동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중립이 아니다. 그래서 ‘중도’라는 말은 공허해진다. 합리성이라는 말은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언어에 불과하니 말이다.왜 한국에는 지성이 없는가. 역사적으로 반지성, 반인권적 집단인 북한에 복종하는 것이 '자유지성'으로 불려온 남한의 지성계에서 류근일 류가 그 방향과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조직화하고 세력화했음을 본다.